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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의 키워드가 ‘자비(慈悲)’라면 성탄절은 ‘평화(平和)’다.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성탄절은 고즈넉한 마을에 별이 반짝이는 밤이 찾아오고, 모든 집의 지붕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으며 어디선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캐럴이 들려오는 이미지다. 수많은 영화와 문헌을 통해 이런 장면이 ‘평화롭다’고 각인됐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이런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차분하고 안정적 분위기보다는 ‘절대자의 절대의지인 절대적 선(善)을 따라 정의가 구현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왜곡한 중세시대에는 평화라는 이름의 전쟁을 빈번히 일으켰으며, 정의의 이름으로 무참히 생명을 앗아갔다. 시대는 흘렀지만 ‘평화’라는 단어가 강대국 몇몇이 주도하는 힘에 의해 강요된 평화로 변형·왜곡됐다는 지적을 흘려들으면 안 된다.

현대 들어 평화는 지긋지긋한 전쟁에 대한 악몽에 따라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협의의 의미로 고정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평화는 정치사회 지도층의 구호로 사용되기에는 너무도 고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정의가 이루어진,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Utopia) 상태인 것이다. 사전은 평화를 ‘분쟁 없이 서로 이해하고, 우호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풀이했는데 지구촌 분쟁을 지켜보노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2012년의 끄트머리에서 우리에게도 평화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화합(和合)’을 부르짖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이념적 좌우로 나뉘고, 세대별로 구별되며, 지역이 찢어져 있다. 미봉책의 봉합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수십 년간 쌓여온 병폐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념이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를 ‘죽일 듯’ 선거를 치렀다. 따라서 정치적 몇 자리를 배려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이럴 때 모든 문제를 ‘용서와 배려’라는 촉매제를 첨가해 용광로에 넣고 ‘평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입시문제, 88만원 세대, 노인문제, 소외계층, 남북갈등, 다문화가정, 부의 양극화 등은 단편적인 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지 않은가.

종교적 깊이에 접근하기 힘들지만, 서로의 상처를 인정하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좁은 의미의 평화가 우선 절실하다. 젊은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 연약하지 않은 사람들은 먼저 버스를 탔어도 자리를 양보하고 함께 목적지로 향하는 것 같은 사회적 합의가 평화를 만드는 시작일 수 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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