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열풍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중앙정부, 자치단체 할 것 없이 공공디자인이 대세를 이룬 적이 있다. 물론 현재도 많은 자치단체에서는 공공디자인에 대한 예산과 집행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불과 1년, 2년 전의 분위기와 비교해 본다면, 상당부분 감쇄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굳이 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이나 사회는 생리적 욕구 및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사회적 욕구를 거쳐 자아실현의 욕구에 이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는 여유 자체가 사치스러울 정도로 산업화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왔던 지난 세월을 넘어 이제는 사회와 자아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디자인이 감쇄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삶의 질 향상을 따라 가지 못하는 정체성이 결여된 정책 변화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부 자치단체의 경우 자체적인 공공디자인가이드라인 등을 통하여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는 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공공디자인 역량은 사적인 소비 영역에 집중되어 불균형적으로 발달된 이면에 일관성 있는 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 또한 사실이다.
21세기 문화가 산업의 경쟁력이 되고 공공 영역에서의 수준 높은 삶의 질 향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볼 때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공적 개념의 지속적인 공공디자인의 이해가 필요하다.
정책 입안자들은 오랜 시간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흔적을 문화라 하고 문화의 가공된 상품이 디자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공적 영역을 포함하는 디자인 문화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선진세계의 각국에서는 이미 보이지 않는 문화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중국은 동북아 공정에서 고구려 문화유산을 자기네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네스코에 등재하려 하고, 일본은 독도를 넘어 김치까지 자기네의 것이라며 기무치로 만들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부를 이루었던 영국은 21세기에 들어 굴뚝산업의 쇠퇴를 문화가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을 깨닫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문화스토리로 재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
우리에게는 한류라는 좋은 촉매제가 준비되어 있다. 드라마로 시작되어 K-Pop과 관광, 그리고 상품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인구밀도는 높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있어서 차세대 성장의 동력으로 한류와 문화의 원형을 가공한 공적, 사적인 디자인에 대하여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 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은 크게 두 가지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행정자치단체마다 개최하고 있는 지역축제와 공공디자인 관련 정책이 그것이다.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전문적인 공공디자인 정책의 시행을 위하여 디자인전문 계약직의 특채나 디자인 전담부서의 신설, 시범 및 특화된 가로환경 개선사업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는 자치단체들이 특색 있고 아름다운 도시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도시의 얼굴이자 문화의 콘텐츠로 공공디자인을 부각시켜 차별화된 도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단체장이 바뀌면서, 이미 많은 예산과 비용을 들여 마무리 단계에 이른 전임 단체장의 공공디자인 정책을 상당부분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주요정책의 방향을 복지와 일자리, 그리고 안전에 둔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공공의 어원은 라틴어의 푸베스(Pubes)로 개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전체를 볼 수 있는 성숙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공의 상대어인 개인(Private)은 박탈을 의미하는 라틴어 프리바투(Privatus)에서 유래하였다.
정치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많은 예산과 비용이 투입된 정책을 폐기하거나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공공은 공변될 공(公)으로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함께할 공(共)간이기 때문에 이미 합의에 의해서 진행된 정책은 지속되어야 한다.
70~80년대 우리는 산업화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왔고, 2000년대에 들어 IT와 정보통신의 혁명부분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차세대의 경쟁력 있는 성장 동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 봐야 한다. 문화를 원형으로 하는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놓치고 지나가는 우를 범한다면 산업화나 정보의 혁신은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