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건강보험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산정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차량의 배기량이나 보유년수를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산정해 국산 중형승용차를 보유하고 있으면 낮은 배기량의 비싼 수입차를 가진 경우보다 건강보험료를 더 낸다. 실제로 6천만 원 상당의 배기량 2천㏄ 수입차와 2천500만 원 상당의 국산차에 적용되는 건강보험료가 동일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늦게나마 배기량이 낮거나 오래된 자동차는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보험공단이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니 씁쓸한 마음 감출 수가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3일 이 같은 내용의 건강보험료 개선 방안을 마련해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에 권고했다.
권익위는 이에 따라 자동차 등급별 점수기준에 차량 가격을 추가하고, 배기량이 낮거나 장기 보유 차량은 산정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또 금융기관 대출로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피보험자가 부채를 신고할 경우 이를 반영해 보험료를 감면해줄 것을 제안했다.
건강보험료 무임·저임 승차 가입자가 500만 명에 이르러 재정누수가 심각하다는 보고는 충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윤희숙 연구위원은 23일 ‘건강보험이 경제의 비공식부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임금소득자임에도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분류되거나 피부양자로 가입된 규모가 497만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고 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이 500만 명에 육박한다는 분석이다.
지역가입은 소득·재산·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산정되므로 재산이 적은 경우 소득액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월급쟁이 직장가입자보다 적은 보험료가 부과된다. 피부양자는 소득이 없다고 인정된 경우로 아예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건강보험공단은 개인의 근로시간과 이들 사업장이 직장가입 대상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관계기관과의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세당국에 직장 다니는 사실을 숨겨 지역가입으로 분류되거나, 일정한 근로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가족 중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돼 본래 부담해야 할 보험료보다 적은 액수만 내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스스로 신고하고 납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관계당국과의 각종 자료 공유로 제대로 물리고 제대로 거둬들여야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피해는 항상 성실한 국민들만이 입게 된다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