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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선생 장녀 안수산 여사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맏딸인 안수산(88)여사가 지난달 말 국내에서 나온 자서전 「버드나무 그늘 아래」(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최근 내한했다.
미 캘리포니아주 노스리지에 거주하는 안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정보장교로 일본 해군의 암호를 풀었고 미 국가안보청(NSA) 연구원장으로 활동했던 여장부. 올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고 이민 100주년을 빛낸 5대 영웅으로도 선정됐다. 이번 한국방문은 지난 2000년 이래 3년만으로 아들 필립 안 커디 부부, 자서전의 저자인 존 차씨와 동행했다.
안 여사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도산공원에서 열릴 출판기념회와 흥사단 창단 90주년 행사에 참석한후 연세대에서 특강도 갖는다.
안 여사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서툰 한국말로 도산에 대한 추억과 자신의 삶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다음은 안여사와의 일문일답.
--한국을 방문한 소감은
▲저는 나라도 아버지도 없이 산 사람으로 한국에 오면 너무 기쁘다. 우리 자랄 때는 나라가 없으니까 독립만 생각했다. 당시 나라 없는 백성으로 한국인들이 고생을 많이해서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나라가 있어 여러분과 같이 앉아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쁠 따름이다.
-아버지로서의 도산선생을 어떻게 기억하나
▲1926년 내가 11살 되던 해 아버지가 집을 떠났다. 집을 떠날 당시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보고 웃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표정에서 슬픔을 읽었다. 아버지는 또한 우리에게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셨다.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 사람임을 잊지 않았던 것은 그 때 아버지의 당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사진을 5장 갖고 있다. 내가 항상 보고 있는 적십자 배지를 단 아버지의 사진과 젊은 시절의 아버지 사진, 감옥에서 찍은 사진 등이다. 젊은 시절 모습은 잘 생기셔서 기분이 좋아 자주 보게 되는데 감옥에 갇혀 가슴에 번호를 단 죄수 복을 입고 있는 사진은 볼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가 해주신 말 중에 살면서 힘이 됐던 말은
▲아버지는 항상 "죽어도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와 오래 같이 살지는 못했지만 내가 힘들 때 항상 그 말을 떠올렸다. 나는 항상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했다.
아버지는 또한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씀도 하셨다. 한국에 와서 높은 빌딩, 넓은 도로의 많은 차 등 발전된 모습을 보니 기쁘다. 여기 참석한 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다시 공감하게 된다. 여러분이 이 나라를 잘 발전시켜 주길 부탁한다.
-해군 장교 시절은 어떠했나
▲내가 키가 작아 어디가나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됐다. 키 작은 동양여자가 해군 유니폼을 입고 다니니 키 큰 서양인들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해군 장교였을때 내가 한국말을 하고 일본말도 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는지 해군 정보국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일본말을 할 줄 모른다. 정보국에 옮겨져서 6개월 동안은 암호해독 업무를 하지 못했다. 부대장이 동양여자인 나를 신임하지 못했나 보다.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암호해독 기술을 배웠고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다면 안여사에게 무슨 말을 하시겠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 하실 것이다. 남북이 분단됐는데 너도 남북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되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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