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2087호 채택 2시간 만에 비핵화 폐기를 선언하는 외무성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로서는 도둑이 매를 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일단 분노부터 치민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한 조건에서,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 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는 저들의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유일체제의 수령’이 유훈으로 남긴 한반도 비핵화마저 정면으로 뒤집겠다는 것이다. 유엔 제재안이 나올 때마다 북이 강경한 대응을 밝히긴 했지만 이번처럼 근본적 틀마저 바꾼 경우는 없었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 압박 책동에 대처하여 핵 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인 군사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는 임의의 물리적 대응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결의안 2087호로 북한의 추가 발사나 핵실험에 대해 ‘중대한 조치’를 하겠다고 한 데 대해 맞불을 놓은 것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과 신형 KN-08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강행한다면 한반도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감지된다. 더욱이 현재 외교적 노력이 부재한 상황이어서 한반도 평화가 더욱 우려스럽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은 이제 막 정권교체를 마치고, 북한 핵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새로운 해법을 다듬는 시기다. 북한이 유엔 결의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걸 보면, 그들 나름대로 이러한 정세 변화에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이제는 핵 협상의 틀을 뛰어넘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 운운한 부분은 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제는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제 곧 2월 중순이면 한미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다. 말 대 말의 부딪침이 아니라 행동 대 행동의 방아쇠가 당겨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북한의 적반하장에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분노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북의 추가적 무력시위나 도발에는 강력히 대응하더라도, 차분하게 추이를 주시하면서 상황 악화를 미리 막을 방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면 문제를 풀 방도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다행히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이 유엔 제재에 동의했고, 재취임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대북 정책을 전환할 것으로 점쳐진다. 새 정부는 즉각 역량을 총동원하여 한반도 평화의 새 틀을 짜나가야 한다.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우리 몫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