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山水畵). 자연 현상과 경치를 주제로 그린 그 그림에는 여유로움, 넉넉함, 그리고 배려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쯤 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그림 속 아주 작은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산/수/화(山水華). 언제부터인가 오산, 수원, 화성 3개 시(市)를 아우르는 이 신조어는 주로 통합, 상생, 협력, 미래, 발전 등과 어울려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산/수/화에는 동양화 속 여유로움도, 넉넉함도,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더 복잡하고 머리 아픈 또 다른 현실만이 투영되어 있다. 답답할 따름이다.
과거에 산/수/화 지역은 역사적·공간적으로 하나의 지역 공동체였다. 현재는 산업화·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행정구역 분리를 통해 독립된 각각의 지방자치단체로서 법적 지위를 갖고 발전하고 있다. 미래는 어떠할까? 2013년 지금의 현실은 답답할 따름이다.
지난 2월12일 한국행정학회의 산/수/화 지방행정체제 개편 공동연구용역 최종 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제시된 결과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3개 시는 2012년 2월 산/수/화 공동연구용역 협약식을 맺고 통합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진행과정에서 일부 지역의 통합에 대한 거센 반발로 연구 방향이 지역의 상생·협력 방안 도출로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진은 중간보고에서 장기적인 관점의 통합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최종결과 보고에서 통합 의견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도출되어야 하는 연구 결과에서까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세력이 ‘통합’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답답할 따름이다.
산/수/화 3개 시는 상생과 협력을 모토로 리더십 토크 콘서트(2012년 9월 1일, 용주사 효행문화원)를 열기도 했고, 청소년들의 어울림 마당 페스티벌(2012년 11월 3일, 수원역 광장)을 개최했으며, 급기야 3개 시 시장과 지역 주요 인사들이 멀리 흑산도까지 가서 상생·협력 협약식을 맺기도 했다. 흑산도 여정은 예기치 못한 풍랑으로 배가 뜨지 못해 1박 2일 일정이 4박 5일로 늘어나 유배 아닌 유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 풍랑이 상생·협력의 험하고 어려운 과정을 예견한 것일까? 각종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지금 산/수/화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산/수/화의 상생·협력은 산수화가 풍겨 내는 여유로움, 넉넉함, 그리고 배려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여유로운 시각으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넉넉하게 경청하고, 상대 지역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어야만 논의가 가능한 것이다. 각 지역의 문턱을 낮추고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데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로는 상생·협력이 아닌 대립과 반목의 골만 깊어질 뿐인 것이다. 미래의 산/수/화 지역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도시들과 경쟁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수원을 지목하며 기득권을 갖고 있는 대도시가 오산·화성을 흡수 통합하려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기득권 유지를 위해 통합 논의에 결사반대 하는 것은 아닌지? 일부 지역은 자체적인 성장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산/수/화의 공동 노력을 통해 그 잠재력을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이 지역 주민들의 진정한 의견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때이다.
산/수/화의 상생·협력에 대한 논의는 특정 지역만을 위한 것도, 특정 계층을 위한 것도 아니다. 미래 이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우리 후세들을 위한 진정한 고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이제 가까이 있는 산수화 한 점 앞에 서보자. 그 여유롭고, 넉넉하며, 배려가 풍겨나는 그림 앞에서 미래의 이 지역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우리의 책임이 너무도 막중하지 않은가? 이제는 과거와 현재의 반목과 답답함에서 떨쳐나 미래의 모습만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상생·협력을 약속했던 흑산도에서 풍랑이 가시던 때의 통쾌함을 떠올려 보자. 주민들은 그런 시원함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