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5일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고,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시작됐다. 지금 보기에 5년이라는 임기는 길어 보이지만,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면 전혀 길지 않다. 5년을 날로 환산하면 1천825일에 지나지 않는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이 완연해진다는 경칩인 오늘까지 포함하면, 벌써 1천825일 가운데 9일이 지나가게 된다. 앞으로 1천816일의 임기를 남겨둔 새 정부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2017년 2월 24일 환호와 박수 속에서 자랑스럽게 퇴장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5년 임기가 매우 짧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고 선택된 핵심 국정과제에 정책수단을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의 성공을 책임지는 청와대 직원들 한 명 한 명의 책상 위에, 또는 청와대 내부 모든 집무실의 벽에 ‘D-1816’과 같은 임기 상황판이 걸렸으면 좋겠다.
두 번째 성공조건은 착실한 준비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시작해야 하며, 일단 시작하면 금방 끝이 보인다는 의미다. 이처럼 중요한 새 정부의 시작을 준비한 곳은 지난 2월22일까지 48일 동안 활동했던 인수위원회다. 그런데 이처럼 막중한 임무를 지닌 인수위가 일을 잘 했느냐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박한 편이다. 인수위 활동에 대한 브리핑이 많지 않았고 타이밍도 맞지 않는 등 언론과의 관계가 부드럽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언론의 박한 평가와 달리 인수위 업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인수위 직원을 최소화하고 인수위 자문위원직을 없애면서 인수위 명함을 남발했던 과거의 폐단이 없어졌으며, 낮은 자세로 열심히 일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
사실, 인수위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를 잘 정리해 내는 것이다.
지난 2월21일 인수위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 중점적으로 추진할 목표와 과제를 잘 정리해서 5대 국정목표, 140대 국정과제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바 있다. 과거 정부와 달리 구체적인 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정말 다행스럽다. 그리고 국민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일자리’와 ‘복지’를 중심으로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점을 천명했으며,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를 다양한 산업과 융합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도 제시했다.
물론 몇 가지 문제점도 드러났다. 선거기간 내내 중요한 공약으로 앞세웠던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140대 국정과제의 목록에서 제외하는 실수를 한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공약의 내용은 거의 다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바람에 오해를 자초했다.
지난 25일의 대통령 취임사에는 부랴부랴 다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포함시켰다. 더 아쉬운 점은 ‘버려야 할 공약’을 명확히 하지 못한 점이다. 그 동안의 공약 가운데 실천이 어려운 공약을 골라내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국정과제의 순서를 정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소홀했다는 점이다. 남은 기간에라도 짧은 임기를 감안하여 정책과 국정과제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책의 성공가능성을 높여가기를 기대해 본다.
새 정부의 마지막 성공조건은 준비된 정책과 국정과제를 빈틈없이 집행하는 것이다. 많은 장관들이 내정은 됐지만, 아직 정부조직법과 청문회가 국회에서 마무리되지 않아 공식 임명장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이처럼 개문발차(開門發車)한 새 정부의 모든 공직자들이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 ‘즐풍목우’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즐풍목우’(櫛風沐雨)란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빗물에 목욕할 정도로 촌음을 아껴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대표적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는 요순시대를 계속 연장해 갔던 우 임금이 치수(治水)에 참여했던 고사에 따르면, “우 임금은 친히 삼태기와 가래를 들고…, 거센 바람에 머리 감고 소나기에 목욕하면서(즐풍목우) 일했다. 그리하여 천하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새 정부의 성공은 멀리서 구하지 않아도 된다. ‘즐풍목우’의 자세로 일하는 공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직함이 모여서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