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를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리·타’
독자로서 나는 문학의 장르 중에서 시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 같은 경우 인내력을 가지고 오랜 시간 앉아 읽어야 하지만 시 한 편을 읽는 것은 훨씬 시간이 덜 걸리고, 또 혼자서 낭송의 기쁨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언어이다.
물론 시가 시적언어로 표현된다고 해서 시를 언어학의 한 분야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는 모든 것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우리의 전통 시는 진달래, 국화, 사슴, 노루, 해, 달, 눈, 산, 강 등 자연에서 그 소재를 찾아 감정이입을 하여 시로 표현한 것이 많았다. 그러한 시 읽기에 익숙해져있는 나는 음성이든 의미이든 언어학적 속성을 소재로 한 시, 즉 서두에 인용한 ‘롤리타’나 아래 정진규 시인의 ‘삽’이라는 시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시가 언어학은 아닐지라도 언어학의 주요 범주인 음성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과 어느 정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내가 믿는 것도 그런 연유다.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롤리타’와 ‘삽’이라는 시를 찬찬히 낭독해 보면 ‘롤리타’와 ‘삽’이라는 단어의 소리는 구강구조에서의 발성, 즉 언어학의 음성 음운론적 요소와 효과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롤리타’ 라는 특수한 고유명사와 ‘삽’이라는 도구의 내재된 의미파악은 언어학의 의미론적 요소를 다분히 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또 ‘혀끝 롤리타’가 주는 음성적 발현과 이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적 효과는 마치 ‘혀끝 놀리다’를 연상시키는 유사 동음이의어를 통한 번역에 있어 언어적 유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정희 시인의 ‘응’이라는 시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이것은 언어의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햇살 가득한 대낮/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네가 물었을 때/꽃처럼 피어난/나의 문자/‘응’// (중략) 너와 내가 만든/아름다운 완성// (중략) 땅 위에/제일 평화롭고/뜨거운 대답/“응”’
나는 ‘응’이라는 단어가 의성어인지, 의태어인지 그냥 단어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모티콘 언어처럼 ‘응’이라는 글자의 모양에서 하나의 의미를 찾는 시인의 언어적 상징성은 대단한 것 같다. ‘응’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기호학적 상징성은 ‘응’이 나타내는 청각적 효과와 어우러져 의미와 음성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또 정끝별 시인의 ‘통속’이라는 시를 보면 시인의 예리한 통찰력을 통해 시가 문학의 한 장르에서 언어학의 한 영역을 침범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서두르다를 서투르다로 잘못 읽었다. 화두를 화투로, 가늠을 가름으로, 돌입을 몰입으로, 비박을 피박으로 읽어도 문맥이 통했다. (중략) 중심이 없는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가로와 세로를, 성골과 진골을, 콩쥐와 팥쥐를, 덤과 더머를, 델마와 루이스를 헷갈려 한다. 짝패들은 죄다 한통속이다. 칠순을 넘긴 엄마는 디지털을 돼지털이라 하고 코스닥이 뭐해요? 라고 묻는 광고에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신다. 웃는 육남매를 향해 그래봐야 니들이 이 통속에서 나왔다 어쩔래 하시며 늘어진 배를 두드리곤 한다. (중략) 오독이 문맥에 이르러 정독과 통한다. 통독이리라.’
이 시의 제목은 ‘통속’이다. 언어의 통속, 즉 언어의 소통인데 발음이 비슷한 많은 유사 동음이의어들이 서로 의미가 통하는, 즉 중의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는 명백한 언어의 유희로서 언어학의 음성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이 고루 내재돼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시의 언어학적 효과의 절정은 육남매를 잉태한 어머니의 배를 하나의 통, 통속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결국 이 시의 제목 ‘통속’, 즉 언어의 소통과 통한 결과이리라.
시가 이렇듯 언어에서 소재를 끌어다 쓰면 그 소재는 무궁무진하게 되고 시의 외연 또한 훨씬 더 넓어질 것이다. 언어학적인 시! 신선한 흥밋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