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꽃샘추위로 움츠리기도 하지만 심심치 않게 냉이를 비롯한 봄나물로 반찬을 해 먹는다는 얘기와 밝아진 옷차림이 드물게 보이기도 하지만 워낙에 봄이 짧은 이곳은 따뜻한 날씨라고 해도 아침저녁은 아직 쌀쌀하다. 이런 잠시의 쌀쌀함을 달래기에 좋은 게 바로 커피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그렇고 잠시 한가한 틈이 나면 커피 한 잔을 위해 모인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다 보니 어떤 때는 잠을 설친다고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고맙게도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이렇게 시시때때로 마시는 커피 때문에 혼자 웃을 때가 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워낙 시골이라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다방도 꽤 먼 면 소재지에나 있었고, 차를 마시는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사람도 없는 수저를 놓으면 구수한 숭늉이 들어오고 가끔 어른들끼리 말씀을 나누시거나 농사일을 하실 때에도 대부분 차가 아닌 막걸리가 따라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먼 친척 집에서 어떤 젊은 사람이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며 무언가를 드리고 갔는데 초콜릿과 과자 그리고 검은 녹색 종이에 라면 수프처럼 포장된 것을 몇 개 본 것 같았다. 나중에 그게 미군 보급품인 씨 레이션이라고 하는 전투 식량임을 알게 되었고, 그 젊은 남자는 월남전에 다녀와서 할머니께 몸성히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드리고 간 것임을 알았다. 어쨌거나 초콜릿과 과자는 다 먹었지만 그 종이에 싼 것은 주지 않으셨다.
우리 집은 손이 귀해 모든 과자나 그밖에 군것질 거리는 무엇이나 우리 차지였다. 그런데 도대체 그 네모난 종이에 든 것은 왜 안 주시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막내 고모가 그게 바로 미국사람들이 먹는 커피이고 끓여 먹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아이들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져서 공부를 못한다는 말과 함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나는 어른들이 모두 가까운 친척집 제사에 가신 날에 동생들을 부추겨서 일을 저질렀다. 물론 동생들에게는 커피라는 게 무척 맛이 있다고 하면서 같이 부엌에 나가 찬장 안에 있던 커피 봉지를 찾아냈을 때의 그 의기양양함이라니….
그러나 한밤중에 시골에서 물을 끓이는 방법은 솥에 물을 넣고 불을 때는 방법과 작은 양을 끓일 때에는 따로 숯불을 피울 때도 있지만 간편하게 화롯불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아무도 불을 땔 줄을 몰랐고 또 무서워서 화롯불을 이용하기로 했다.
양은 냄비에 물을 가득 담아 다리쇠를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앉히고 커피 봉지를 탈탈 털어 넣었다. 그리고 기대에 가득 차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아마 열 번도 더 뚜껑을 열어 보며 마음을 졸였지만 막내 동생은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고 얼마를 기다리다 우리도 겨우 바닥에 물방울이 생기기 시작하자마자 대접에 한 국자씩 떠서 잔뜩 기대를 하고 조금 마셨는데… 아, 아!? 그 누가 일러라도 주었다면, 씁쓸, 떨떠름, 그 고약했던 맛이라니….
지금도 커피를 마실 때면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에 혼자 웃는 그 옛날의 추억이다. 내 커피의 역사는 이렇게 유구했으려니와, 역사의 현장에 동참했던 착한 동생들은 지금쯤 그때 일을 기억이나 할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