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甲乙) 관계’의 논란이 진행형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그렇다면 병원에서 의사는 갑인가, 을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논쟁 결과, 의사는 을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명쾌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갑의 정의가 “비용을 지불하고 재화와 용역을 제공받는 입장”임을 감안한다면 을은 반대로 “재화와 용역을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는 을이고,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돈을 내는 환자는 갑이라는 논리다. 한편으론 수긍이 가지만 아리송하다.
국회에서도 지난주 이런 아리송한 논쟁이 여·야 간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윤창중이라는 메가톤급 이슈 때문에 수면 밑으로 잠겼지만 당시는 우리가 을이니, 너네가 갑이니 그야말로 ‘갑론을박’ 하며 지도부까지 나서 신경전을 펼쳤다.
신경전의 요지는 이렇다. 보도를 보면 지난 8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정 총리가 요즘은 국회에서 민주당이 더 ‘갑’인 거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민주당은 원내의석 절반을 넘는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이 당연히 국회 관계에서는 ‘갑’이고 민주당은 ‘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도 과거에는 여야 관계에서 여당이 ‘갑’으로 비쳐진 측면이 있지만 요즘에는 야당이 ‘확실한 갑의 위상’이고 자신들은 오히려 ‘을’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정부 출범 후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증공세는 주로 야당이 했고, 최근 경제민주화 입법도 야당이 주도하는 양상이지 않느냐며 야당이 갑이라 주장했다는 것이다.
국민들 보기엔 도무지 어느 당의 말이 맞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갑·을 관계에서 ‘갑’은 권위적으로 군림하고 부당하게 착취하는 자, 반면에 ‘을’은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로 보호·지원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내용을 잘 아는 국민들은 여야의 갑·을 논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여야는 경제민주화 실현에 앞장서겠다는 호언했다. 그러나 가맹점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를 더 강도 높게 규제하는 경제민주화 관련법안 처리는 무산되고 다음 임시국회로 넘겨졌다. 그럼에도 논란의 중심에 서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여야가 서로 ‘갑’ ‘을’을 따졌다니 답답하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