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잣나무로 불리는 백향목(柏香木). 백향목이 가지런한 숲속은 고품격이 흐른다. 그 숲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백향목의 꼿꼿한 자태에서 훼절이나 변절이란 말을 차마 담을 수 없다. 지조의 상징. 나무는 약간씩 굽어가며 크는데, 이 백향목은 올곧다. 지사(志士) 혼을 풍기는 모습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개인의 인격도 이와 같아야 한다.
최근에 잠시나마 국격이 추락된 사건이 있었다. 국가 요직 인사가 개인의 파탄 난 인격을 넘어 국사(國事)를 단숨에 토네이도 급으로 함몰시킨 불행한 사건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 별의별 일들이 무수히 벌어지는 것은 다반사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할 개연성이 많다. 그래서 국격을 바로 세워야할 것이며 그러려면 특히 공무를 수행하는 개개인의 인격체는 마치 백향목처럼 꼿꼿하고 늘 푸르러야 한다.
백향목의 뿌리가 내리는 지하에는 장엄한 협력이 있다. 하늘 아래에서 기품이 있는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서 땅 속에서는 서로서로 얼키설키 꼭 부여잡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희생이요 장엄한 협력이다. 이 합력으로 선을 행한다. 이렇게 아끼고 배려하고 뭉치는 이웃의 뿌리들이 있어서 백향목 나무는 꼿꼿한 자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가 보다. 특히 산 비탈진 곳에서 더욱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리하여 산은 붕괴되지 않고 산의 형상을 잘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가까이는 도시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분들의 노고로 그나마 깨끗해진 도로변 풍경을 보며 묵묵히 직분을 수행하는 책임감 있는 자세에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응달진 곳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본다.
백향목에는 잡새들이 둥지를 틀지 않는다고 한다. 뱀이나 해충들도 얼씬거리지 않는 위엄이 있다고 한다.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신 분들은 이 고결한 백향목에 둥지를 틀 수 없어서 스스로 잡새가 되기를 자처하셨는가? 감히 그 위엄 앞에 굴복하고 외국으로 가서 페이퍼 컴퍼니에 둥지를 틀다니 오히려 그 분들에게 한없이 긍휼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글로벌 시대에 세상은 좁다며 숱한 말들을 하였지만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유령회사와 거래를 하였다니 그렇다면 그들도 유령이었단 말인가? 백향목의 기품 있는 향기를 맡으며 정언(正言) 정행(正行)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탈세를 해가며 수익을 남겨서는 정작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끊임없는 부의 축적이요 탐욕밖에 더는 없을 것이다.
백향목 속에는 진액이 흐른다고 한다. 잣나무 특유의 기름이 나무 속에 흐르고 있어서 결코 가뭄 등 외부의 악화된 환경에 노출될지라도 결코 굴하지 않는 꼿꼿하고 늘 푸른 자태를 지니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내면에 간직한 고결한 인품이다. 시류에 가볍게 휩쓸리지 않는 고고한 자태다. 이 얼마나 아름다고 의지하고픈 품격인가? 감히 그 나무에 어찌 둥지를 틀 수 있단 말인가? 바라만 봐도 정화되는 혹 신의 경지가 아닐까?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경기예총 2012년 빛낸 예술인상 수상 ▲한광여중 국어교사 ▲전 (사)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시집-『카프카의 슬픔』(시문학사·1992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