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으로 MB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근거한 ‘진로·직업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이런 진단은 학생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문화와 체질은 고려치 않고 북유럽 및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에도 갈팡질팡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 체질에 맞는 진로·직업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현 실태를 철저히 분석하고 문제점을 해결한 후 서양의 제도를 접목했어야 했다.
올바른 진로와 직업교육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상호 협력하는 상황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각 부처 및 기관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어, 자존심 대결을 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상호 협력하려하지 않는 부처 및 기관들의 의식구조로는 지금의 진로·직업교육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부처 간, 기관 간 협력관계가 가장 잘 이루어진 곳이 독일이다. 협력은 첫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정부는 이런 협력적 체제 구축은 하지 않은 채 전 정권이 밀어붙였던 진로·직업교육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전국 학생의 5% 학부모에게 진로아카데미란 10시간 진로교육을 시키도록 주문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진로결정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이 크고 부모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올바른 진로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 것 같다. 그러나 예산도 없이 추진하는 이 정책은 현장 교사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부처간 협력 없이 성공 못해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약 8만6천명의 학부모를 연수시켜야 하는데 진로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초등학교는 지역교육청에서 약 3만5천명의 학부모님을 연수시키는데 5천60만원의 적은 예산을 배정하였고, 나머지 중·고 5만1천명의 학부모를 연수시키는 데는 단위학교 진로교사들이 알아서 실시하라고 하고 있다. 예산 없이 진행하라고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바쁜 학부모를 약 3일간 학교를 나오게 해서 10시간 연수를 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희망자도 아니고 5%(본교 경우, 약 90명)란 할당을 채우는 것도 문제다.
진로교사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경기도교육청은 교감 및 장학사 회의를 소집해서 진로교사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현재 진로교사 중 가장 큰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도 부전공 자격연수를 받고 있는 3기 교사(경기, 388명)들이다. 진로교사가 되기 위해 570시간의 자격연수를 받아야하는데, 연수가 끝나기도 전에 학교에서 10시간 학부모 진로교육연수를 시키도록 강행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권위주의 및 교권탄압 행정은 혁신교육이념과 맞지 않다고 본다.
직업체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국 학생의 35%를 직업체험을 시키라는 공문이 왔다. 체험할 장소도 문제지만, 이에 따른 예산도 부족한 상태로 목표치를 달성토록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학교당 92만∼100만원을 지급하고 35%의 학생을 직업체험을 시키되 견학을 지양하고 실제적 체험이 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필자의 학교 경우, 약 600명의 학생을 100만원으로 직업체험을 진행해야 한다. 이는 편도 교통비로도 모자라는 금액이다. 이 일도 역시 전적으로 진로교사들의 몫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진로·직업교육 강화정책은 미래사회를 위해 올바른 선택이다. 그러나 기반과 시스템을 조성하지 않고, 무턱대고 추진하는 정책은 서툴기 짝이 없다. 진로교사 4천550명을 학교현장에 배치한 것 외에 많은 예산을 들이고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기반과 여건도 마련치 않고 진로교사들에게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식의 교육부와 상급기관의 지침이라고 기계적으로 강행하는 시·도교육청의 전근대적 행정은 이제 사라져야할 때이다.
이념·정파 초월해야 할 때
‘꿈이 있어도 희망이 없어요’라고 성적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겠다며 울먹이던 한 학생 때문에 가슴이 저미었던 적이 있다. 진로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는 교육정책의 방향은 옳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올바른 진로교육이 될 것인지에 대해 정부와 시·도교육감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이다. 특히 진보교육감 중 정부의 정책이라고 외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의 꿈과 밝은 미래를 안내해 주는 일에 이념과 정파, 어떤 사상도 초월해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