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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미국에 다녀온 보빙사(報聘使)가 새로운 문명에 대해 고종에게 보고한다. 그 중에는 큰 충격을 받은 전기에 대해 ‘놀람’과 ‘실용’에 대한 설명과 빠른 도입을 건의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고종은 건의를 받아들이고 바로 전기를 발명한 미국 에디슨사에 전등소 설치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887년 3월 6일 경복궁의 후원인 향원정 일대에 최초로 전깃불이 켜진다. 127년 전이다.

발전기 굉음과 동시에 켜진 첫 전등불은 16촉광 700개. 촛불 하나가 1촉광도 못되니 당시로는 밤이 낮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전 처음 본 것이니 부르는 이름도 갖가지였다.

향원정 물을 이용해 발전시킨 불이라 하여 ‘물불’. 오묘하다고 해서 ‘묘화(妙火)’,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고 ‘건달불(乾達火)’, 발전된 뜨거운 물이 고기를 죽인다고 해서 ‘증어(蒸漁)불’, 괴상한 불빛이라며 ‘괴화(愧火)’ 등등. 제2전등소가 설치된 1894년에는 설비용량이 대폭 증가, 16촉광 전등 2천개가 창덕궁까지 밝혀 궁궐이 장안의 명소로서 더욱 이름을 날렸다.

궁궐을 밝혔던 전등불은 1900년 서울 종로거리에도 등장, 일반인에게도 선보였다. 1899년 개통한 전차가 1년 만에 밤 10시까지 연장운행하게 되자 종로의 정거장과 매표소 주변에 조명용 가로등 3개를 점등한 것이다.

그리고 1901년에는 진고개 일본인상가 주택가에 600여개의 전등불이 밝혀지면서 일반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설치비가 당시 쌀 두 가마니 정도로 매우 비싸 관공서와 부유층만 혜택을 봤을 뿐 대중화의 속도는 더뎠다.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해질 무렵 가정마다 저녁에 ‘불’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던 60년대 시절, 전력 사정이 안 좋아 전구가 꺼지기라도 하면 일명 <다마>를 사러 동네 전파사를 찾던 아련한 추억도 있다. 늘 전기가 부족했던 그 시절은 ‘한집 한등 끄기’, ‘일찍 잠자리 들기’ 운동도 전개돼 후일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했던가. 전등은 에너지 소비의 주범으로 몰리며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내년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경복궁에 불을 밝힌 지 127년 만에 완전히 소등(消燈)되는 것이다.

정준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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