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史草)’란 사관(史官)이 날마다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료다. 실록을 편찬할 초고(草稿)의 뜻이기도 하다. 사관은 승지(承旨)와 함께 왕의 옆에서 국정에 관한 모든 사항을 기록했다. 그리고 기록은, 왕과 신하들의 대화 내용은 물론 당시에 일어났던 주변상황까지 직필로 이루어졌다.
사관은 직필을 생명으로 여겼다. 따라서 사관이 되는 사람은 젊고, 기개가 높고, 지식과 학식이 많으며, 문장력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했다. 문과 급제는 기본이고, 집안도 좋아야 했다. 세파에 찌들지 않은 젊고 명문가로서의 자존심을 갖추고 있어야 직필을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궁중의 모든 비밀을 보고 듣는 대로 직필한 사초는 사관이 가지고 있다가 실록 편찬 때 춘추관에 납부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길 시 갖가지 형벌로 다스리기도 했다. 사초가 아무리 궁금해도 원칙적으로 왕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실록을 편찬하기 전까지는 볼 수 없다. 역사왜곡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록은 왕이 죽은 직후에만 편찬했다. 실록편찬 초고인 사초 내용이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다 보니 역대 많은 왕들이 재임 중 이를 보기 위해 춘추관에 갖가지 압력을 행사했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기록 혹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거나 후세에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없애라 지시해 삭제되고 불태워지기도 했다. 역사가 두려워 그른 일을 옳게 꾸미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했던 왕들의 욕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직필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실록 편찬 때 말썽이 일어나 화(禍) 불러오기도 한다.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이 같은 사초를 근거로 만든 것이다.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문화유산임은 물론, 조선시대 살아있는 역사다. “신이 만일 곧게 기록하지 않는다면, 신의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臣如不直 上有皇天)”라고 한 사관들의 직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대의 사초인 대통령기록물 중 NLL대화록 미스터리가 지난주 내내 정치권을 달구고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늘(22일)이 지나면 검찰이 나선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졌나(風流雲散). 하늘은 알고 있는데 인간은 찾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