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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장마 잡설(雜說)

윤흥길의 ‘장마’를 떠올린 건 지독한 날씨 때문이리라. 오래 내리는 비. 생명까지도 거두어 가는 무서운 수기(水氣).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허무를 그리고 있다.

국군과 인민군인 아들을 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국군인 아들의 사망소식과 함께 시작된 저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과 화해, 그리고 죽음. 이데올로기보다 감정이 앞서 서로를 증오하는, 전쟁은 그런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조선 인조 이후 정권을 놓은 적이 없는 집단과 그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용을 쓰는 무리들의 정쟁(政爭). 한결같이 국민의 눈으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한다고 짖어대지만 말뿐이다. 유사 이래 권력을 좇는 무리들이 어디 한번이라도 백성을 위한 적이 있던가. 그렇다면 장을 지진다. ‘혹시나와 역시나’가 되풀이 되는 인간의 역사, 우리의 역사. ‘속고 또 속고’를 반복하는 백성은 정말 우매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표면상 속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에 근거하기 때문이리라. 위정자야 권력이 생의 목적이자 당위지만 백성은 현실에 발을 딛고 미래를 기대한다. 왜? 당연 미래인 후손 때문이다.

윤흥길의 ‘장마’에서 사돈 할머니끼리 오살(五殺)할 마음을 불사하며 악다구니 썼던 것도 한 쪽에서 자신의 미래인 자식을 잃은 까닭이다. 우리네 어머니가 새벽부터 손·발품을 팔며 일생을 살아온 것도 미래의 배를 불리고 생활의 안위를 보장하려는 숭고한 정신에 기인한다. 권력에 눈 먼 위정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닿을 수 없는 지극한 마음이다. 그들이 봄날 나비와 제비처럼 아무리 깝쳐도 모를 상선(上善) 이다.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오직 네 탓’만을 외치며 백성을 기만하는 무리들을 쓸어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조로(早老)한 머리 때문일까.

다시 ‘장마’를 꺼내든다.

/최정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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