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년 전 화천북방 최전방 적근산에서 보병소대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지금은 북한군의 해상공격이 잦지만 그때만 해도 155마일 DMZ를 통한 소규모 무장공비 침투가 잦았다. 그 당시 15사단은 북한군이 침투시킨 무장공비를 사살하여 부대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무장공비 침투 흔적이 조금만 있으면 우리소대는 주간수색·야간매복 작전에 나섰다.
그해 11월 그믐 적근산, 밤은 이슥하고 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매복에 들어간 지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긴 침묵을 깨고 바람 곁에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 몇 발자국 움직이다 멈춰서고 다시 낙엽 밟는 소리, 철모 속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고 등골이 송연해졌다. 매눈을 뜨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둠 속에서 소대원의 총구가 일제히 나뭇잎 밟는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상대를 먼저 발견하기 위해 공제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공제선 약간 아래쪽에 진지를 파고 매복을 서고 있었다. 물론 그날 공제선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공비가 아니었다. 실탄이 발사되진 않았지만 큰 동물이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공제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우리의 매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공제선은 군사용어이다. 푸르스름한 하늘과 어두컴컴한 산의 능선이 맞닿아 이루는 선, 야간에 공제선상에서는 사마귀 한 마리 기어가도 사슴 한 마리 뛰어가듯 동작이 크고 선명하게 잘 보인다.
올해 봄 어느 신문에서 넓게 펼쳐진 청보리밭 사진을 보고 남쪽 들녘에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동안 짬을 내지 못하다가 모내기가 끝난 유월 모가 열병식을 하는 만경평야를 달릴 기회가 있었다. 기차가 쏜살같이 넓은 평야지대를 관통하여 지나갈 때 창 밖에는 앞이 탁 트이고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선 하나, 난 그 지평선을 놓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지평선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기에 가슴 후련함마저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을 보며 봄날 청보리의 일렁임과 가을 황금물결을 연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평온하였다.
공제선은 높고 가파르고 지평선은 낮고 완만하다. 공제선이 긴장감과 가쁜 숨이 있다면 지평선은 편안함과 긴 호흡이 있다. 공제선은 매눈을 뜨고 지켜보지만 지평선을 부드러운 눈매로 바라다본다. 학창시절 보았던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은 지평선 너머 어디엔가 피안의 샹그릴레가 있었지만 이제 현실에서는 지평선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고 지평선 너머 유토피아는 더욱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전시상황도 아닌데 우리주위에는 온통 공제선뿐이다. 시기와 경계, 충혈된 눈으로 이웃을 공제선상에 올려놓고 파헤치려하고 깎아내려고만 하지 부드럽고 따뜻한 눈매로 상대방을 지평선에 올려놓고 멀리 바라다보려 하지 않는다.
이학성 시인의 말처럼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것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 둥둥 떠가고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말 달리는 광활한 몽골초원의 지평선, ‘한번 뜬 백일이 불같이 작렬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신만이 밤마다 고민한다’고 청마가 생명을 노래했던 아라비아사막의 지평선, 그리고 온누리가 눈으로 덮여있어 하늘과 땅의 경계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알라스카 설원의 지평선, 그러한 경이의 지평선은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다 볼 수 있는 내 마음속의 지평선을 하나쯤 간직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