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아스팔트를 녹일 것 같은 삼복더위를 피해서, 일제히 시작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여름방학 그리고 직장인들의 휴가 등 8월은 ‘떠남’으로부터 시작된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다분히 선동적인 광고 카피가 잘 어울리는 그런 계절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휴가를 무조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현실에서의 삶이 너무 고단해서, 다만 며칠만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쉬고 싶다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황금 같은 휴가를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보다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면 휴가의 의미는 배가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8월 1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되는 ‘제23회 나라꽃 무궁화 전국 축제’나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수원시 청소년 문화공원에서 열리는 ‘전국 무궁화 수원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한편 무궁화가 국민 대통합을 위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체험하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류달영 박사는 『나라꽃 무궁화』라는 저서에서 무궁화를 “운명과 역사를 상징하는 철학이 내재하는 꽃, 고운 여인의 얼굴과 같이 아름다운 꽃 그리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이라 하였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古今記(고금기)』라는 서적에서는 “군자의 나라로 땅의 경계는 천리이며, 木槿花(목근화)가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山海經(산해경)』에서도 “해동에 군자의 나라가 있으니,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서로 다투지 않으며 槿花草(근화초)가 있으니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라고 하여 우리나라가 군자의 나라이며 무궁화가 많이 피는 나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고려 시대의 시인인 최충은 「示坐客」이라는 시에서 “무궁화와 석류 자태가 역시 아름답네(紅槿丹榴態亦姸)”라고 하였으며, 이제현 역시 「高亭山」이라는 작품에서 “인가 곳곳 무궁화 울타리네(人家處處槿花籬)”라 하여 한반도의 아름다움을 무궁화를 통하여 묘사하였다.
소설가 김동리는 「나라꽃 무궁화」라는 수필에서 무궁화의 특성을 “첫째, 무궁화는 생명력이 강하여 어떠한 역경에서도 악착같이 끈기 있게 꽃을 피운다. 둘째, 무궁화는 가장 늦게 피며 가장 오래 산다. 셋째, 무궁화는 원시적이며 신비적”이라고 하였다. 김동리는 무궁화가 보여주는 강인한 생명력처럼 우리도 그와 같은 정신으로 무장하여 어떠한 고난이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이를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사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렇듯 무궁화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개화기 이전까지는 무궁화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정립되는데 특별한 목적의식이 전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남궁억 목사를 비롯한 애국지사들이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나라꽃으로 무궁화를 의도적으로 채택하였다. 그것은 당대 조선민족 전체를 해방이라는 절대적 목표를 지향하는 공동체로 결집시키기 위한 상징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아이콘으로 무궁화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위정자들은 크고 작은 사안 앞에서 정쟁을 일삼아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으며, 국민들은 이념과 지역에 따라 분열되어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단에 이르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대통합은 우리가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국민 대통합을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일제 강점기 그 때처럼 무궁화가 다시 한 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휴가가 그러한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오래 오래 기억될 뜻 깊은 휴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