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엔 비가 많이 오고 빗줄기도 거세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은 1천245mm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강수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동전의 양면. 한쪽은 수해로 아수라장인 반면 기도섬 같은 도서지역은 먹을 물조차 없다. 빗물의 편중, 넘침과 부족의 극단화다.
빙설이 거의 없는 우리의 경우, 수자원의 원천은 연평균 1천276억t에 이르는 빗물뿐이다. 이중 545억t은 증발돼 사라지고 731억t이 땅으로 흘러간다. 그중에서도 400억t은 바다로 바로 흘러가버리고, 331억t의 물만이 댐, 하천, 지하로 흘러가 이용된다. 결국 빗물의 26%만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26%의 물도 결국은 바다로 흘러든다. 다만 육지에서 체류하는 동안 사람들에 의해 이용될 뿐이다. 따라서 물 순환의 측면에서 빗물이 육지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냐가 중요하다. 빗물이 바로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 물은 줄고 강이나 바다 수위는 높아진다.
빗물은 분명 소중한 자원이다. 우선 빗물은 식물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활용처이다. 대부분 옥상이나 집안에 작은 정원이나 화분을 한두 개씩은 기르는데 실내화분, 정원, 농장 등 빗물은 녹색식물을 가르는 데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수돗물은 정화를 시킨 물이라 식물에게는 앙꼬 없는 찐빵을 먹이는 셈이다. 반면 빗물은 창가에 용기만 놔두면 일일이 받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모아지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기도섬의 경우, 빗물정화탱크를 설치하여 음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빗물에는 여러 가지 미네랄이 첨가되어 있다. 천둥 번개가 치면 공중에서는 공기 중의 유리질소가 물과 결합하여 질소 화합물이 되어 식물에게 질소 비료가 되는 빗물에 녹아내린다. 가끔 수돗물을 주었을 때 보다 비를 맞았을 때 식물이 더 훌쩍 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빗물에는 식물에게 좋은 성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황사가 호흡기에는 좋지 않으나 빗물에 녹아 흙 위에 내리면 토양을 비옥하게 해준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런던에서 버스로 4~5시간 걸리는 ‘에덴’이란 작은 마을이 있다. 고령토 광산이었던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지역의 에덴은 세계 최대의 온실로 탈바꿈했다. 5000여종 100만 식물이 재배되는데 2001년 3월 개장 이래 연간 125만명이 찾고 있다. 20번째 007 영화 <어나더데이>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에덴 마을의 비전은 ‘환경, 주민소통, 모든 수익은 지역에게’이다. 바다로 떠밀려온 나뭇조각 하나 버리지 않고 교육 및 건축 자재로 재활용한다. 식물에게 줄 4천300만 갤런의 물은 대부분 빗물을 사용한다. 지금도 전체 물 사용량의 43%가 빗물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어린이집. 이곳 아이들에게 빗물은 특별한 존재다. 아이들이 비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빗물 저금통 때문이다. 어린이집 한켠에 설치된 빗물 저금통은 비 올 때마다 빗물을 모아뒀다가 텃밭에 물을 주거나, 손을 씻고, 각종 놀이에 사용한다. 빗물을 이용해 일군 텃밭에는 호박, 고추, 토마토가 열매를 열었다. 빗물의 중요성을 알게 된 소중한 결실이다. 이곳 주민들은 빗물 저금통을 이용해 옥상이나 화단, 베란다에 텃밭을 가꾼다. 수돗물 말고는 물을 끌어오기 쉽지 않은 도심에서 수도세 걱정을 덜게 된 것. 수돗물보다 빗물로 키운 채소가 훨씬 건강하게 자란다고 느낀다. 텃밭을 가꾸기 힘든 아파트에서는 빗물 저금통의 빗물을 이용해 청소용수로 사용하거나 화분을 가꾼다. 단물인 빗물은 수돗물보다 비누거품이 많아서 때도 잘 진다.
한쪽에선 빗물 이용시설 설치의 경제성이 낮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빗물 이용시설의 사적 편익만 고려됐을 뿐 공적 편익이 완전 배제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빗물관리는 모든 수자원의 근원이다. 집중호우와 가뭄에 대비해 빗물을 모으면 흘러가는 빗물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또 생활용수나 조경수로 쓸 수 있으며,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홍수를 예방할 수 있다. 아울러 수많은 소규모 댐을 건설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빗줄기’는 곧 ‘생명줄기’이다. 동시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그 옛날 1778년 정조대왕은 즉위 후 가장 먼저 빗물관리를 법제화한 ‘제언절목’이란 제도를 만들었다. 최악의 기후 지형조건에서 고통을 겪은 후 터득한 지혜를 모은 한국식 빗물관리의 원조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