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남창동에 위치한 '화성행궁'(경기도기념물 제65호) 1단계 사업 428칸 복원 완료를 기념해서 행궁을 돌아보고 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행궁의 주요 건물에 대해 알아본다.
▲봉수당
화성행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봉수당은 화성유수부의 동헌건물로 장남헌이라고도 불렀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이 건물에서 거행했는데, 이때 정조가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는 악장과 자신의 마음을 읊은 시를 지어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에게 현판을 쓰게 했다.
▲장락당, 복내당
장락당과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으로 장락당에는 혜경궁이, 복내당에는 정조가 행차시 머물렀다. 1794년 완성된 장락당은 정조가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기원해 한나라 태후의 거처였던 장락궁의 이름을 따와 편액을 직접 써서 걸었다. 장락당 남쪽에 위치한 복내당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낙남헌
봉수당 북쪽에 위치한 낙남헌은 행사용 건물로 현재 신풍초등학교 운동장 끝에 위치하고 있다. 낙남헌이란 이름은 중국 후한시대의 도읍인 낙양성 남궁에서 따왔다. 낙남헌은 행사를 위한 건물인 만큼 앞에 넓은 마당이 있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에는 이곳에서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양로잔치를 열기도 했다.
▲득중정
낙남헌 남쪽에 위치한 득중정은 행차시에 매번 활쏘기를 했던 정조가 1790년에 새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활을 4발 쏴 4발을 모두 맞히고는 이를 기념해 '득중정'이라고 명명했다. 상량문에는 "용대기를 세우고 원침에 배알하여 반달처럼 휘어져 사방에 위엄을 떨치니 활터에 표후(豹帿)를 맞대었구나. 이에 날아갈 듯 화려한 집을 지어 중곡(中鵠)한다는 좋은 이름을 지었구나"라고 쓰였다. 결국 '득중'이라는 이름은 문무겸비의 국왕이 되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을 스스로 표출 한 것이다.
▲노래당, 미로한정
행궁에는 휴식을 위한 시설도 겸비돼 있었는데 그 역할을 하던 곳이 노래당과 미로한정이다. '늙은 것은 운명에 맡기고 편안히 거처하면 그곳이 고향이다'라는 백거이(당나라 시인)의 시에서 이름을 따온 노래당은 낙남헌과 득중정에서 펼쳐지는 각종 행사 중 휴식을 취하기 위한 건물이며,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 담긴 미로한정은 행궁 후원에 정원으로 가꿔졌다.
▲그밖에 건물
행궁에는 각 건물로 들어서는 여러 문이 있는데 궁궐 건축의 삼문 바깥, 중간, 안쪽에서 차례로 설치한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중간에 좌익문, 그리고 봉수당 바로 앞을 지키는 중양문이 있다.
이밖에 화성행궁에는 평소 화성유수가 거쳐하다 정조 행차 시에는 신하를 접견하는 곳으로 쓰였던 유여택과 임금이 행차할 때 화성행궁에서의 행사준비를 담당하는 관청으로 쓰인 외정리소, 그리고 비장청, 서리청, 집사청, 남·북군영행각, 우회관 등이 있다.
이혜진기자 lhj@kgs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