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내 달력엔 13월을 넣기로 한다/한 해를 12월로 마감하기 허전해서다/단 하루 마지막 달 할일이 참 많을 것 같다/첫사랑 산골 소녀에게 엽서를 보내고/눈 내리는 주막으로 친구를 불러내고/헐벗은 세월을 견딘 아내를 보듬어주고/또 미처 생각 못한 일 없나 챙겨가며/한 해를 그렇게 마무리 해보고 싶다/….” 시조시인 박시교의 ‘13월’이라는 시다.
시 구절에 표현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어느새 2013년 한 해가 저문다. 12월 달력도 이미 스무날 가까이 지워졌다. 이제 남은 날이라야 고작 열흘 남짓이다. 빠르다 못해 시위를 떠난 살 같다는 표현이 더욱 실감난다.
한해의 끝이 다가올수록 공연히 마음만 바빠진다.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일 게다. 더불어 연초에 기원했던 소망을 되돌아본다. 희망을 화두로 넉넉한 삶을 바랐다. 또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랑을 키워가며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난 것 같다. 오히려 삶에 짓눌려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바람같이 지나고 말았다.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 속도감을 느낀다고 했던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나이의 중압감에 허덕인 그런 한 해이기도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받은 영향력을 새삼 거론치 않아도 우리 삶에 녹아든 생활의 무게는 그리 녹록치 않았음도 부인 못하는 사실이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나이를 비교하며 현재 자신이 이룬 지위와 부(富)에 대해 아쉬워하고 노인은 노인대로 묵히고 쌓인 나이 때문에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중년들은 해마다 누적되는, 나이라는 퇴적물에 미래를 묻으며 괜한 세월 탓만 할뿐이다. 따라서 돌아보면 몸도 마음도 급했다. 일이 있건 없건 항상 쫓겨 다녔고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우연히 지나다 관공서 앞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을 보고서야 연말인줄 안 뒤 “벌써”를 되뇌며 삶의 무게에 눌려 지낸 한해를 야속해 한다.
공자가 어느 날 강가에 서서 도도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인가, 밤낮으로 멈출 때가 없구나. 逝者如斯夫 不舍晝夜(서자여사부 불사주야)하고 탄식했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을 이야기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인 이태백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이렇게 읊었다. 세상은 모든 만물이 잠깐 머무르다 가는 숙소요, 세월은 그 천지 사이를 잠시 묵고 가는 나그네다. 夫天地者萬物之逆旅(부천지자만물지역려)요 光陰者百代之過客(광음자백대지과객)이라. 천지간의 모든 만물은 변하지 않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며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를 얘기했다. 연말만 되면 유독 이런 구절들이 생각나는 것은 지나온 나날들의 후회일 것이다.
올해는 무엇보다 웃음과 흥을 잃은 한해였다. 즐겁게 한바탕 폭소를 터뜨린 기억은 그저 손으로 꼽을 정도다. 나아지지 않은 살림살이 덕에 한해 내내 어깨는 짓눌려 힘없이 내려앉았고 하루하루 이어지는 삶은 고달프고 팍팍하기만 했다. 희망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채 현실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여유가 없으니 생활은 리듬을 잃고 각박해졌다. 정(情)도, 이웃도, 사랑도 사라져 제 주장만 목청껏 내세울 뿐 반대의견을 들어주는 여유도 사라졌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네편 내편 가르기에 바빴고 심지어 경제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향해 무조건 어느 한 편에 서도록 강요도 했다. 그 강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해가 성큼 가버리고만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리는 게 있으면 분명 얻는 것이 있는 게 우리네 인생사다. 때문에 가는 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으로만 보낼 수는 없다. 최소한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도 한 얻음일 수 있어서다. 내년엔 희망을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그 희망을 이야기 하기 위해 신앙적이고 삶의 교훈적인 시(詩) 몇 편을 읽으면서 한 해를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