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눈이 풀풀 내리는 세모의 거리 풍경이 서글프게 느껴짐은 왜일까? 2013년을 보내며 우리 사회의 지금 모습이 마치 이 겨울날처럼 스산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거리를 지나치는 힘겨워 보이는 시민들의 일상 모습들에서 ‘청 말의 해’라 하는 2014년을 겨눈 힘찬 역동이 그리 실감나게 느껴지지 못함은 왜일까? 비단 혹한의 날씨 탓만은 아니리라.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휘감아 도는 위기사회, 갈등사회, 과격사회, 고위험사회의 징후들….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파다하게 퍼져 나가는 안녕 대자보 파동, 장성택 처형사건 이후 북한의 심상치 않은 위태로운 정변 상황, 국토 대동맥 철도 파업의 힘겨운 대치 상황, 여야의 벼랑 끝 대치 정국들 모두가 세모를 맞는 우리네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잘사는 대한민국 우리의 행복지수가 고작 세계 90위란다. 하루에 평균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률과 우리 국민의 스트레스지수가 불행하게도 세계 최고란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떠오른다.
깊은 어두움의 터널을 빠져 나가고 싶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문득 다시 드는 생각은 ‘절망의 접점’에서 만나는 ‘희망의 가능성’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미 군용차를 따라다니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태어나서 1살도 못 살고 죽어가는 영아사망률 세계 1위이던 비참한 나라였다. 그 시절이 언젠가 싶게 우리는 지금 당당히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G7 세계 강국의 반열에 우뚝 올라서 있다. 세계적인 학습강국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자랑스러운 나라다. 교육 원조를 받던 최빈민국에서 교육원조 공여 일등공신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가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2014년은 무릇 희망이었으면 한다. 최고의 열정자본을 지닌 인재들이 뛰고 있는 한, 대한민국은 ‘다시 희망’일 수밖에 없다. 다시 뛸 수 있다. 순간 훌쩍 뛰어 넘는 성장의 ‘도움닫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적인 교육열을 가진 학습민족이고, 손재주가 뛰어나고 민첩한 기민함을 지닌 민족이다. 은근과 끈기가 있으며, 신바람과 풍류정신이 뛰어나다. 정도 많고, 한다면 하는 강한 성취욕과 승부욕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2014년은 분명 희망일 수밖에 없다. 2014년 각종 언론의 헤드라인은 대한민국의 숨은 영웅들이 만들어 가는 ‘희망의 성공신화’들로 그득했으면 싶다. 부탄의 4대 국왕, 세계 최연소 국왕인 왕 추크가 말한 대로 국민경제총생산 GNP보다 오히려 ‘국민행복’ 총생산지수인 ‘GNH’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할 시점이다. 100세 시대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누구도 성별이나, 나이나, 학력이나, 출신지역이나, 소득수준으로 인해 행복한 삶의 사다리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말아야 한다.
99세에 처녀시집으로 시인에 등단한 세계 최고령 시인 일본의 시바타 도요 선생이 떠오른다. 일본 열도가 쓰나미 대참사로 절망적일 때 그녀는 ‘약해지지마’라는 시집을 출간하여 동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도 번역판으로 익숙해진 시 ‘…있잖아,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누구나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살면서 괴로운 일 많았어, 하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101세 때 장례식 대신 시집을 100만권 넘게 만들어 절망의 늪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전했다는 시바타 도요 선생을 말이다.
이런 저런 희망의 바람으로 글을 써 내려 가다보니 창밖에 어느새 깊고 푸른 황홀한 저녁이 드리운다. 고즈넉한 저 길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 쌓이고 있다. 흰 눈이 말한다. ‘있잖아 약해지지마, 내일은 분명 희망이거든’ 하고 속삭인다. 그래서인가. 나는 지금 이 작은 일상의 평범한 행복에 깊이깊이 감사하고 싶어졌다. 타임지가 권하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나라 1순위라는 라오스 사람들이 말하듯, 만일 행복이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행복을 찾아가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