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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어렵다. 그것이 사랑이라도 그렇다. 특히 맨 처음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눈치만 살피다가 1년 2년 3년’이 지나갈 정도니 말이다. 사랑고백도 이럴진대 자신의 신상에 대한 고백이나 조상에 대한 고백은 힘들기가 갑절이다. 더욱이 그것이 못나거나 추한 경우라면 더더욱. 휴일 아침 오래된 시집들을 뒤적이다 놀라운 대목을 발견하곤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송수권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이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가여워하는 수준이라면 송 시인의 자화상은 너무 솔직해서 읽는 이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든다. 일부를 공유하면 이렇다.

‘…/봉수대가 허물어진 그 골짜기에는 우리 웃대 先親 한 분 잠/들어 계시다/한양이라 시구문 밖 소문난 망나니로 씽씽 칼바람을/내며 가셨다 하니/그 무덤 속엔 당대에서도 잘 들던 칼 몇 자루/녹슬어 있지 않았을까./어느 해 한식날이던가 성묘 길에서 아버님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무덤을 비껴가며/ 족보에도 없는 무덤이니라 힘 주어 말씀하시었으니/…/

우리 先親 소문난 칼 솜씨 칠월 장마에/풋모과 떨구듯/나도 한평생 뎅겅뎅겅 모가지나 흘리며/살다 가지 않았을까.’

시인의 아버지도 애써 외면하던 조상의 직업을, 아무도 묻지 않은 세상에 내던지듯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그가 한평생 ‘씽씽 칼바람을 내며’ 살았던 망나니였노라고 말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자신의 펜과 망나니의 칼을 동일시해 ‘그’가 ‘또 다른 나’라고 읊조리고 있다.

눈길은 한동안 망나니에 머물렀다.

내 조상이 망나니였다고 고백할 수 있는 자, 몇이나 될까. 칼 한 자루 들고 ‘한평생 뎅겅뎅겅 모가지나 흘리며 살다’간 최하층 천민. 인도의 ‘불가촉 천민’과 비견되는 인간군(人間群). 칼만 쥐어주면 저 아래 목이 누구의 것인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가늠하지 않고, ‘그래, 이 칼도 권력이다’라고 믿으며 휘둘러대던 무뇌충(無腦蟲)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사람들.

그런 조상을 무덤에서 불러낸 시인의 펜이 두렵다.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망나니의 후예들이 판치는 이 시대에 시인의 고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살필 일이다. 지금 내가 휘두르는 칼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겨누고 있는지 잘 살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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