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이 이제 모두 지나갔다. 2013년은 유난히 일들이 많았다. 매년 사건 사고가 많았던 것이 우리네 역사지만 올해는 유난했던 것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해가 거듭될수록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지고 사안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올해의 가장 큰 사건은 국정원 대선 개입의혹 그리고 이석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대 최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철도 노조 문제도 올해 10대 사건에 포함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들 사건은 정부의 갈등조정 기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게 공통적이라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좀 더 일찍 적극적인 조정 역할만 했더라면 문제가 이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즉 적기에 정부가 최소한 유감 표명이라도 하고, 적극적인 국정원 개혁 의지를 피력했더라면 이 문제가 대선불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도 국민들 중 상당수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가 현 정권의 정통성과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면, 좀 더 일찍 그리고 적극적으로 국정원 개혁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제기했더라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이석기 문제 역시 정부의 갈등조정 역할이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종북 세력에 관한 것이다. 종북 세력에 관해서는 여론의 균열이 그다지 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갈등조정 기능이 제대로만 작동했더라도 문제가 이토록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갈등조정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석기와 그 추종 세력이 오히려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큰소리를 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피해자 코스프레’는 이번 철도 노조 파업에도 등장한다. 이번 철도 노조 파업은 불법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정부는 당연히 이런 불법파업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많은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갈등조정을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갈등 조정자의 역할은 하지 않은 채 자꾸 법과 원칙만 강조하며 강제진압만 하려드니 불법 행위를 자행한 이들이 오히려 피해자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노조를 마냥 밀어붙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역시 여론의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갈등조정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조용해질 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내년 지방선거를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치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이번 철도 노조 파업 문제를 슬기롭게 넘기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민주당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민주당은 내년 초부터 지방선거 공천을 두고 극심한 계파 갈등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갈등조정의 기능을 잘 발휘해서 사회적 갈등을 큰 무리 없이 극복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갈등 상황을 잘 이용하면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입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안철수 신당 역시 그다지 큰 폭발력을 갖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정부의 갈등조정 기능의 회복은 단순히 사회적 비용의 절감 차원에서 뿐 아니라, 내년도 정국 지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라는 생각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하루 빨리 갈등조정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의 지지율에 만족하면 반성이란 있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지방선거는 어려워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레임덕이 조기에 나타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 제고는 정권 자체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