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을 음력으로 섣달그믐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날은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아련한 추억의 속설도 갖고 있다. 때문에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는 이날을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서 “나이 더한 늙은이는 술로써 위안 삼고 눈썹 셀까 어린아이 밤새도록 잠 못 자네”라고 읊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해마다 섣달그믐이 되면 신하들이 왕에게 문안(問安)을 하고, 양반가에서는 조상을 모신 사당에 절을 하는 풍습도 있었다. 또 집안마다 웃어른을 찾아뵙고 묵은세배를 올렸고 친지들끼리 특산물을 주고받으면서 한 해의 끝을 뜻있게 마무리했다. 일반가정에서는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그믐날 밤 사람들이 집에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아침이 되도록 자지 않았는데 새해에 복(福)을 받으려는 기원 성격이 짙었다. 때문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잠을 잘 일이 아니라, 묵은해를 되돌아보고 새해 설계를 하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교훈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제야의 종’을 울리는 것으로 가는 아쉬움과 새해에 거는 기대를 대신한다. 12월31일 밤 12시를 기해 33번을 타종하는 ‘제야의 종’ 행사는 1953년부터 시작했고 지금은 서울 보신각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서 독특한 새해맞이 행사로 정착돼 있다.
‘제야의 종’은 원래는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종을 108번 울리는 것에서 유래됐다. 33이라는 숫자도 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 세상인 도리천(33천)에 닿으려는 꿈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도리천은 복잡한 인간의 번뇌, 즉 희로애락이 없다는 곳이다. 따라서 타종의 의미도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서울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타종하듯 미국 뉴욕시에선 세계적 새해맞이 행사인 ‘타임스퀘어 공 내리기(Times Square ball drop)’가 열린다. 1907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지름 3.5m 크기의 둥근 공이 특수 제작된 깃대에서 43m를 내려오면서 새해 시작을 알린다.
오늘 자정 어김없이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세상에 울려 퍼지는 그 종소리에 번뇌의 계사년(癸巳年)을 실어 보내고 희망찬 갑오년(甲午年)을 맞이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