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부조금을 담은 봉투를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칠순을 맞아 부부가 합동으로 고희연을 하게 되어 나들이 삼아 다녀오시라고 했다. 그나마 날씨는 조금 누그러진 듯해서 다행이었다. 예전 같으면 음력 섣달을 썩은 달이라고 해서 잔치를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계절도 없이 청첩장이 날아온다.
오후가 되어 어머니께서 흡족하신 얼굴로 돌아오셨다. 자식을 많이 낳으면 기르기는 힘들어도 큰일 때는 좋다고 하시며 딸이 다섯이나 되어 외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까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니 꽃밭처럼 호화롭다고 칭찬이 이어진다. 떠나실 때는 마땅치 않아 한겨울이나 삼복에는 잔치를 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친한 분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이 되신 것 같아 괜한 불평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가 하면 요즘은 칠순이라고 해도 너무 젊은데다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시면 잔치를 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물론 듣기에 따라서는 일리가 있어 보이나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즐거워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 드리는 게 그나마 효도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환갑이나 칠순이면 강산이 변하기를 몇 차례나 하고도 남을 세월이니 모처럼 식사라도 하며 뜸 했던 소식도 들으면 그 나름의 기쁨도 있다. 남모르는 눈물과 상처를 덮고 살았을 덧없다할 세월을 격려와 축복의 눈으로 바라보는 치유의 시간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말년이 조금이라도 덜 외로우려면 평소에 재(財)테크보다 우(友)테크에 힘쓸 일이다.
반드시 칠순이나 팔순이 아니어도 회갑이나 생일잔치도 할 수 있으면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생일날 가족들끼리 자식들을 위해 정작 당신은 뒷전이셨던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면 받으시는 쪽보다 드릴 수 있는 행복을 상상해 보자.
인쇄된 청첩장을 돌리고 부조금을 받으며 밴드나 국악인이 주도하는 잔치가 아니라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잔치를 벌여보자. 반드시 거창하게 잘 차리고 사람이 많이 모여야 잔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게 바로 잔치다.
동창회 같은 친구들 모임도 양지 바른 마당에서 어린 시절에 했던 수건돌리기나 보물찾기 또는 기차놀이나 고무줄놀이도 있다. 눈이 쌓인 운동장에서 눈싸움도 해 보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었다.
하긴 이런 케케묵어 싫증이 난 놀이가 어떨지 모르지만 그건 걱정거리도 안 된다. 몇몇이 모이면 그 안에 오락반장은 반드시 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 시절 교복도 입고 우리를 가르치신 은사님께서 계시다면 더 좋은 하루가 되고, 여의치 않다면 그 시절을 회상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돈도 시간도 문제라고 하겠지만 장수시대라는 만만치 않은 숙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는 무언가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