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스산한 날은 옥상에 올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지붕을 본다. 밟으면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을 비닐이며 천막으로 깁고 폐타이어 또는 벽돌로 눌러놓았다. 연통을 빠져나온 연기가 기차의 먼 기적 받아먹고 흩어지는 역 근처의 여인숙 골목이다.
이곳은 난방을 연탄으로 주로 한다. 가장 저렴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방법이 연탄이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은 지붕 위 굴뚝으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연기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혼자 웃음을 짓는다. 지금은 대부분 도시가스며 등유 등으로 난방을 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연탄을 많이 사용했다.
큰 아이 다섯 살 무렵이다. 새 운동화를 처음 빨아서 연탄아궁이 옆에 말리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니 벌겋게 불이 붙은 연탄 위에 운동화를 올려놔서 운동화가 바짝 오그라들면서 불이 붙고 있었다. 얼른 운동화를 끄집어내고 왜 그랬느냐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운동화를 신고 싶어서 빨리 말리려고 불 위에 얹어 놓았다고 했다.
벼르고 별러서 산 캐릭터 운동화였다, 사오자마자 신고 놀다가 논에 얼음이 깨지면서 젖어 빨아 널었는데 하루도 못 신고 이 모양이 되었으니 나도 화가 났지만 아이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운동화를 보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아이는 연탄 나쁘다고 아궁이에 물을 가득 채워 며칠을 고생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수시로 꺼뜨리던 연탄불이며 바짝 말려서 사용하려고 미리 사놓은 연탄이 늦가을 장마에 무너져 부엌이 온통 까맣게 되었던 일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연탄은 사용하기도 쉽지 않지만 채탄작업은 정말 어렵다.
그 녀석 첫돌 무렵 잠깐 탄광촌에서 살았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태백에 가면 새로운 기반을 잡을 수 있다는 말에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태백으로 이사했고, 채탄을 운반하는 철로 옆에 방을 얻었다. 탄가루가 얼마나 심한지 기저귀를 빨아 널면 기저귀가 까맣게 말랐고 뒤뚱뒤뚱 걷던 아이가 한번 넘어지면 옷이며 손이며 모두가 새까맣게 됐다. 바람이 불면 검은 연기가 훅 날라들곤 했다.
듣던 대로 하천에는 검은 물이 흘렀고, 주변에는 진폐증 환자가 많았다. 지하 막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수시로 구급차가 비상 신호를 울리며 달렸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작업인부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일단 지하 막장에 들어가면 사고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여덟 시간 동안 나오지 못했다.
남편이 광부 일을 하기 위해 태백에 간 것은 아니지만 1년을 버티다 다시 이사를 나왔다. 지금은 채탄작업도 많이 줄어들고 탄광촌도 다른 대체 사업들로 변해가고 하천도 맑은 물이 흘러 예전의 모습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뀌는 동안 세상도 변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 나눔, 배달 봉사를 하는 기업 또는 단체도 많아졌고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연탄 기부를 하기도 한다. 엄동설한에 이웃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살맛나는 일이다.
사는 일이 고단하다고 느껴질 때 옥상에 올라 지붕 낮은 집들을 바라본다. 연탄 한 장 열기와 처마를 맞댄 집들의 온기를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 까만 속을 하얗게 태워 본 적 있는지 반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