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재작년 것도 되나?” 아침부터 뜬금없는 소리에 사무실 사람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선배의 어의없는 말 한마디 때문이다. 후배가 툭 뱉듯이 답한다. “일년치만 되는 거예요.” 그러자 그 선배 왈 “연말 정산은 너무 힘들어.” 그 말에는 모두들 공감하는 눈치다. 그래, 13개월의 월급으로 불리는 연말 정산을 위한 자료찾기란 쉽지 않다. 국세청이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간편한 연말정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특히 40~50대 중년에게는 더더욱. 하여, 대부분 젊은 사람의 힘을 빌리기 일쑤다. 그렇지 않고 혼자 낑낑대다간 검은 머리에 서리내린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차라리 군대를 대신 가겠다’라는 엄살이 나올 정도니 알만하다. 일단,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뱅킹이 일상화 돼 있는 사람이야 접근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은행을 찾아가 공인인증서를 발급받고난 후에야 간신히 ‘간편한’ 사이트에 들어설 수 있다. 그 다음부터 겪는 우여곡절이야 말해 무엇하랴. 연말정산서를 제출한 당신, 대단하다.
그 선배의 해프닝이 있은 후 갑자기 든 생각.
연말정산 하나에도 절절매는 것이 우리네 삶인데 인생을 정산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울까.
운수납자(雲水衲子)거나 선지식(善知識), 또는 구루(Guru)라면 삶이 간편하게 정산되겠지만 나같은 범부야 턱없는 일일터. 세상의 끈을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다람쥐 꼬리만큼이나 될법한 앎이 그렇고, 바득바득 살면서 모아온 재산이랄 것도 없는 부(富)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건 아마도 생(生)이 가져다준 인연일 게다. 부부, 부모자식, 형제자매, 선후배, 친구, 직장동료 등 얼마나 많은 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던가. 이 관계 속에 언제나 착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짓눌러야 행복한 사람도 있겠다.
귀천(歸天)보다 앞선 귀향(歸鄕)길, 스스로에게 묻는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설명절, 살아온 날들을 부분정산이나마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