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 연휴가 지났다. 민족의 대이동은 시작되고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진풍경 속에 우리 형제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며 연휴를 보냈다. 명절 스트레스는 설에 고향 길에서 교통지옥을 체험하며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준비라도 한 듯이 제발 한 번이라도 그렇게 다녀오고 싶다고 잘라 말한다. 그 하루를 위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당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나열하며 그들의 입을 막기 일쑤였다.
요즘 방송을 보면 연예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 중 고부간이 출연해 이런저런 날에 빚어진 웃지 못 할 일이라든가 사소한 오해로 갈등을 빚었던 일들이 화제에 오른다. 물론 세대차이도 있고 살아온 환경에서 오는 거리도 있으나 그 간격을 좁히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진지하기까지 하다.
그 중에 명절 이야기가 단연 으뜸이다. 며느리가 여럿이면 그 중에 아롱이도 있고 다롱이도 있게 마련인데 시어머니와 손을 맞추어 많은 일을 하면서 힘이 들다보니 입이 나오는 며느리, 눈치도 보이고 늦게 오는 며느리, 야단을 칠 작정도 아니고 아예 일거리 옆에는 얼씬도 안 하다가 웃는 얼굴로 봉투 하나 내밀고 제일 먼저 자리 뜨는 며느리에게 음식이라도 싸 보내야 하는 입장이니 시어머니 노릇도 편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대부분 며느리의 손을 들어준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세태에서도 큰며느리에게 주어지는 짐은 세상이 변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구태를 고수하고 있다. 제사음식 장만이 어려워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명절이 주부들에게 커다란 짐이 되고 보니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고 있어도 어려움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올 설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우선 연휴가 길어져 우리 집에도 찾아오는 인원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미리 오는 것도 아니고 당일 오겠다는 연락이다. 마침 어머니께서 남들이 만두 주문하기에 우리도 두 봉지나 주문하셨다. 설날 아침에 시동생으로부터 차가 막혀 지체 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네 식구만 떡국을 먹고 상을 치우고 나니 생전 처음 홀가분하게 끝이 났다. 설거지를 하고 커피 잔을 들고 앉아 있으려니 뭔가 허전하고 느슨한 느낌이다. 며칠을 동동거리며 발이 저리고 팔이 늘어나는 것 같던 일이 반도 안 되게 줄어들어 좋기도 했지만 헐렁하게 지나가는 설날이 뭔가 빼먹은 기분이다.
눈썹 셀까봐 억지로 잠을 쫓으며 만두 빚는 구경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설은 그렇게 오는 줄 알고 살았던 내가 보아온 가족을 위한 사랑과 배려가 없었다. 힘이 들어도 정성스럽게 차린 떡국 한 그릇과 마음이 담긴 덕담이 핏줄에 대한 애정과 결속을 다지는 끈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요즘 잘 나가는 탤런트나 아이돌 그룹은 암만 봐도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서 도무지 분간을 못하겠다고….
돈만 주면 아무 때나 파는 똑 같은 떡이나 똑 같은 만두가 내 손맛에 길들여진 입에 맞을 거라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