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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정조와 마상무예

 

1784년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존호를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바꾸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경과(慶科)를 실시했다. 그리고 무과에서 무려 2천여명을 합격시켰다. 정조는 이중 500명을 선발,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고 왕의 호위를 맡게 했다. 그리고 8년 뒤 1793년 화성건설계획을 추진하며 이름을 장용영(壯勇營)으로 개칭한 뒤 도성 이외에 수원에 외영을 설치했다. 도성을 비롯 외영에 주둔했던 군사 수만도 4천여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사들은 수시로 진법을 익히고 단위로 활쏘기와 조총사격, 창검무예인 24기(技)를 연마했다. 이들 군사 중 전투력이 뛰어난 기병부대 ‘선기대(善騎隊)’와 친군위(親軍衛)에는 별도의 특수훈련을 추가시켰다. 특히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던 장용영 내부 무예 시험에 정조가 직접 참여하면서까지 기병 전투력 강화에 신경을 썼다.

도성을 방어하는게 선기대의 임무였다면 친군위는 수원에 설치된 장용외영에 주둔하면서 화성의 방어와 정조의 화성행차에 대한 호위가 임무였다. 친군위도 선기대와 마찬가지로 수시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감행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군사훈련이나 관무재를 비롯한 시험에서 뛰어난 마상무예 실력을 보인 군사에게는 당시에도 비쌌던 말을 선물로 줄 정도로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조선의 역대 왕 중 기병의 중요성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정조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는 조선시대 군사무예교범을 집대성토록 하면서 그 책에 수록될 ‘무예24기(武藝二十四技)’에 여섯 가지의 마상무예를 추가토록 지시하기도 했다.

말을 타고 창을 쓰는 ‘기창(騎槍)’, 말을 타고 쌍검을 쓰는 ‘마상쌍검(馬上雙劍)’, 말을 타고 초승달 모양의 긴 칼을 쓰는 ‘마상월도(馬上月刀)’, 말을 타고 도리깨 모양의 무기를 쓰는 ‘마상편곤(馬上鞭棍)’의 네 가지 전투 기술과 말을 타고 ‘장시(杖匙)’라는 끝이 둥근 채로 공을 치는 놀이이자 훈련인 ‘격구(擊毬)’, 말 위에서 다양한 재주를 부리는 ‘마상재(馬上才)’ 등이 그것이다. 한국마사회에 의해 올해 우리나라 마(馬)문화를 빛낸 최고의 위인으로 선정된 정조. 부국강병을 위한 마(馬)사랑을 헤아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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