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붕이라 부르는 도야마현(富山縣) 다테야마(立山) 북알프스 지역은 동절기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다. 동쪽 끝이 1988년 18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이기도 한 이곳은 눈이 한번 오면 수m씩 쌓인다. 특히 2천m 안팎의 고지대인 까닭에 눈만 오면 어김없이 고립된다. 해서 2월부터 두달 간 불도저와 제설차,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길을 뚫는다.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길만 내는 것이다. 고립된 집과 집,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뚫은 도로 옆 설벽(雪壁) 높이가 1~2m는 보통이고 20m에 이르는 곳도 있다. 지역에서는 이런 길을 ‘토끼길’이라 부르는데 7월 한여름까지도 일부가 남아 있기도 하다.
요즘 강원도 지역이 이런 토끼길 뚫기에 한창이다. ‘폭탄’이라 불릴 정도의 눈이 강원도 지역을 덮쳤기 때문이다. 어제(9일)까지 최고 90cm 이상 폭설이 쏟아졌고, 앞으로도 40cm가량 더 내릴 것이라는 예보도 있다. 이처럼 치우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내리고 쌓이는 바람에 눈으로 유명한 지역이 눈에 의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기상 관측 이례 최대’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의 폭설은 도시를 마비시켰고, 대부분 고령자인 외딴 지역 주민 다수도 고립시켰다. 따라서 수많은 토끼길을 내기 위해 군과 공무원도 동원됐다. 이마저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에서는 주민들 스스로 토끼길을 내 이웃집, 또 옆 마을과 겨우 겨우 연결했다. 우여곡절 끝에 낸 토끼길을 통해 고립주민들은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구호물자를 전달 받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눈으로 인한 고립감의 무서움을 다시금 실감케 해준다.
조선시대 공허(空虛) 스님과 시인 김삿갓은 금강산 백운암에 거처하며 어느 날 입석봉에서 시문답을 나눴다. 공허스님이 “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천지도 희오)”라고 하자 김삿갓이 “山深夜深客愁深(산심야심객수심: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소)”라고 받았다. 이렇듯 쌓이는 눈은 고요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때론 공포감을 자아내게도 한다. 2월 들어 입춘을 시샘하듯 폭설이 내리고 있는 강원도가 이런 상황은 아닐는지. 4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지금의 딱 절반만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