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발치에서 봄이 까치발을 들고 있다. 태양은 땅 밑을 뒤적여 새순을 꺼내놓기 시작하고 칩거에 들었던 나무는 한 뼘쯤 영역을 넓혔다. 유리문 안 붉은 선인장은 금방이라도 봄을 터트릴 듯 꽃망울을 부풀리는 이월의 중순이다.
새로운 시작은 꽃으로 축복하는지 거리엔 꽃다발을 든 학생들로 왁자하다.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등학교가 졸업식을 하면서 한산하던 동네 꽃집도 활기를 되찾고 꽃 속에 파묻힌 학생들의 표정에도 힘이 넘쳐난다.
하나의 과정을 마친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디딤돌이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도전하는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물론 출발 선상에 선 이들에게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도 필요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대견한 것은 나라의 희망이고 기둥이기 때문일 게다.
대학 3학년을 마친 딸아이가 휴학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를 했다. 꼭 학업을 중단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1년을 늦춘다는 것이 마땅찮았다. 딸애는 22년간 고생한 자신에게 휴가를 주면서 취업을 위한 스펙도 쌓고 여행이며 부족한 공부를 준비하는 재충전의 과정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평생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지금이 아니면 완벽하게 휴가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있겠느냐는 말에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어 못이기는 척 넘겼다.
아이는 열심히 놀았다. 다이어트하고 명예기자하고 여행 다니고 짬만 나면 영화관에 가고 나름대로 충실히 살았다. 할 일이 없어서인지 한 열흘 병원에 입원도 하고 공모전 입상도 하면서 노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다시 복학준비로 분주하다. 수강신청을 하고 머리를 다듬고 장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했다.
로또에 당첨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열거하면서 돈을 벌어야하는 이유를 말하기도 하고, 판사가 되어 사회의 부조리와 죄악에 대해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는 엉뚱한 말로 딸 바보인 아빠를 놀리기도 하는 디자인이 전공인 그녀.
그녀에게 올 한해는 누구보다 힘겨운 한해가 될 것이다. 졸업작품전이며 취업 그리고 나름대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 할 때가 지금인 듯하다.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웃으면서도 큰 눈에 잔뜩 고이는 눈물을 보면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잘 극복하고 이겨낼 것이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에게 주문하는 것은 늘 같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고, 내 정신이 건강해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여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살라고 주문한다.
겨울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좀처럼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봄은 오고 꽃이 핀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건 없다. 물러서던 겨울이 삼사월에 폭설을 내리기도 하고, 유실수가 동해를 입어 수확이 줄어들기도 하는 것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회로 삼는 자만이 자신을 단련시킬 수 있다.
언 땅을 녹이는 일이 그러하듯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잘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힘을 실어줄 때 출발신호와 함께 그들의 힘찬 질주는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