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영문(The Cloud Dream of the Nine)으로 번역해 서양에 한국 문학을 처음 알린 캐나다 출신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 선교사. 그는 우리의 문화와 생활의 지혜를 매우 사랑했다. 개화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그는 특히 당시의 가난함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속에 흐르는 따스한 인간미에 크게 매료되기도 했다. 길거리를 지나다 젊은이들이 어른을 모시는 걸 보고 감탄한 것은 물론 ‘조선은 노인 천국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조선에서 노인으로 살고 싶다’라는 말을 회고록에 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먹으면서 한 알도 흘리지 않는 것을 보고 ‘곡예’라는 표현을 빌려 감탄하기도 했다.
게일은 봄이 되면 산과 들에서 채취해 먹는 나물에 대해서도 언급하기도 했다. ‘먹을 수 있는 나물의 가짓수를 한국 사람만큼 많이 알고 있는 민족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뒤 서양에서는 독초로 분류되어 가축도 안 먹이는 고사리를 물에 우려 독을 빼가면서까지 먹는 한국인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당시의 나물은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빈곤의 상징이기도 했다. 얼마나 먹을 것이 귀했으면 산과 들에 나는 나물을 그렇게 상식(常識)했을까 짐작이 가지만 외국 선교사의 눈에는 신비하게 비친 것만은 분명하다.
예부터 궁중에서도 입춘에 아직 채 녹지 않은 눈 밑에서 캔 움파, 산갓, 당귀싹 등 햇나물을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경도잡지>나 <동국세시기>에는 그런 나물이 양근, 지평, 포천 등 경기도의 산골마을에서 진상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런 나물이 제철음식 또는 건강식품으로 바뀌어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에 왔다. 냉이, 씀바귀, 쑥, 원추리, 취나물, 도라지, 두릅, 더덕, 달래, 돌미나리, 부추 등 시중에 나온 것만도 10가지가 넘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잃기 쉬운 봄철 입맛을 돋우기 위해 이 같은 나물을 찾고 있다. 나물이 절식(節食)은 절식인가 보다. 사계절이 없는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절대 맛볼 수 없는 나물, 오늘 저녁 밥상에 산뜻한 봄나물로 겨우내 몸과 마음이 찌든 가족들에게 봄기운을 가득 안겨주면 어떨까.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