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바라본 들녘이 옷을 갈아입느라 왁자하다. 겨우내 나이테를 키우던 나무에 물이 오르고 벌써 꽃을 피워낸 버들가지엔 참새가 봄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멀리 보이는 배나무는 나무마다 퇴비 두 포대를 기대놓은 것으로 보아 농경이 시작되었음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시내 외곽에 있어 풍광이 좋다. 아파트 주변의 과수원이며 이런저런 수목들도 많고 저수지가 있어 사계절의 변화를 집안에서도 볼 수 있다.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며 울타리에 흐드러지게 핀 장미 그리고 향기 그윽한 아카시아 등 내 정서와 맞는 곳이어서 이십년을 넘게 살고 있다.
무엇보다 화단에 목련이 장관이었다. 달빛 은근한 밤, 갓 시집온 새색시같이 단정하고 우아한 자태로 꽃을 터트리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한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유리문 안을 기웃대던 목련이 보이지 않는다. 목련이 CCTV를 가린다고 가지를 모두 잘라내고 전봇대처럼 몸통만 세워놓은 것이다.
이십여년을 함께했던 목련 옆에 카메라를 세움으로써 시야가 가려진다고 곧 꽃이 필 목련을 싹둑 잘라냈다. 속도 상하고 울화도 치밀었지만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니 어쩔 수가 없어 카메라만 노려보다 돌아섰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는 곳마다 카메라가 있으니 도대체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없다. 몇 달 전 주차한 차량의 꽁무니가 찌그러졌는데 연락처도 없고 해서 CCTV영상을 보게 되었다.
주차한 시간에서 시작하여 파손된 시간까지 카메라 영상을 보는데 정말이지 아찔했다. 카메라 앞을 통과한 사람들의 몸짓이며 행동거지 등 모든 것들이 다 녹화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건들거리며 걷는 나의 모습부터 시작하여 주차를 하고 옆에 주차된 차량의 바퀴를 걷어차는 젊은 남자, 만취한 중년 여인의 비틀거림까지 보지 말아야 할 영상들이 몇 개의 카메라에 잡혔다.
카메라가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덕분에 차량을 파손한 사람을 찾아 변상은 받았지만 씁쓸했다. 공동구역은 어디서든 자유로울 수 없다. 현관에, 승강기에 심지어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까지 낱낱이 공개되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거리에서, 차도의 곳곳에서 감시망을 피할 수는 없다. 물론 범죄예방 등 안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점점 기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차량에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해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인터넷을 통하여 순식간에 유포되고….
화단의 주인은 분명 목련이었지만 카메라를 설치하면서 나무 대부분이 잘려나가는 것처럼 이 땅의 주인은 분명 우리인데 기계가 주인도 될 수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도 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거실 좀 더 깊숙이 봄볕이 들어찬다. 햇빛을 복사하여 봄이 완성되고 잘린 목련도 새순을 꺼내놓을 것이다. 뒤쫓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변하는 문명에 때론 주춤거리기도 하지만 자연 속에서 사람 중심의 세상이 활짝 피는 봄날이면 좋겠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