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에 메달 4개를 선사한 빅토르 안,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8년 전 토리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금메달 3개를 선사했던 그의 러시아 귀화는 이번 올림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다. 귀화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안현수는 “파벌 싸움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여론은 대한빙상연맹의 파벌 싸움 때문이라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그러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파벌주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같은 사회적 조건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자기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류의식을 가지고 집단 외부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활동을 하는 행동양식이다. 우리 사회의 파벌주의는 정치계와 경제계, 교육계에도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사회악’이기도 하다.
국민의 성품은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적 환경을 반영한다. 나는 <한국형 12성품교육론>을 쓰면서 한국인의 성품이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기반으로 형성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 문화와 그에 따른 한국인의 심리적 특징을 분석했다.
첫째, 한국인의 성품은 동양의 관계주의 문화권에 영향을 받아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관계 속에서 정서적 만족을 얻는다. 둘째,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셋째, 정(情)을 중시하여 정이라는 감정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다. 넷째, 한국적 샤머니즘의 영향 때문에 개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외부에 의존하여 해소하려고 한다. 다섯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참고 삭히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김으로써 한(恨)의 문화가 나타난다.
그중 ‘정’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심리적 특징은 집단 구성원들의 거리감을 좁혀주고, 가족처럼 의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순기능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부조리를 눈감아 주거나 ‘우리끼리’가 아니면 배제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빙상연맹 내부에는 이른바 ‘한체대 파’와 ‘비한체대 파’의 파벌이 있는 모양인데, 안현수 귀화 사태는 아마도 이런 파벌 내부에서 ‘정’을 중시한 한국인의 심리적 특징이 반영돼 빚어진 비극으로 보인다. 안현수 선수는 자신에게 닥친 부조리나 부당함을 마음의 상처와 ‘한’으로 남긴 채 조국을 포기하고 ‘귀화’의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갈등과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감정이나 아픔을 드러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참고 삭히며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체념, 또는 ‘분노’로 표출해 버리려는 한국인의 특징이 또 반영됐다.
실제로 한 조사기관이 “안현수와 한국 국가대표가 쇼트트랙 경합을 벌이면 누구를 응원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무려 70%가 ‘안현수’라고 응답했는데, 이 또한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여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보다 아픔을 끌어안고 관계의 단절을 결정한 안현수 선수의 선택이 적절했다고 평가하는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좋은 성품이란 “갈등과 위기 상황에서 더 좋은 생각, 더 좋은 감정, 더 좋은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재능 있는 선수가 되기까지 왜 어려움이 없었겠나? 그러나 선수 개인의 전문적 기량을 갖추는 것도 올림픽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좋은 성품으로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들을 뛰어넘어 잘 해결하는 능력 또한 중요한 기량이다.
문제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성품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관습을 답습하거나 체념하기보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 풀리지 않는 숨은 우리들의 문제들을 이제 좋은 성품으로 풀어 보는 노력들이 절실하다. ‘안현수 사태’를 통해 느끼는 건 우리 국민이 함께 좋은 성품에 대해 생각하며 좋은 생각과 좋은 감정, 좋은 행동으로 더 좋은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범국민적인 화해와 용서가 일어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