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인 기형도(奇亨度)의 시 <질투는 나의 힘> 중 일부다.
29살에 요절해서인지 유독 그에게 ‘청년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영원한 청년시인’, ‘신화가 된 청년시인’ 등등. 그리고 작품 속에 나타나는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감수성으로 인해 2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다. 시의 문외한들조차 그의 시 한 구절 정도는 어디선가 들어본 경험을 갖고 있을 정도다. 특히 갑작스럽게 숨진 비극적 죽음과 그를 둘러싼 온갖 추측까지 더해지면서 젊은 독자들에게 흡인력을 발휘해 오고 있다. 그가 남긴 단 한권의 시집, 처녀시집이자 유작시집이 된 <입 속의 검은 잎>은 1989년 5월 출간 이래 지금까지 27만여부라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으며, 지금도 일주일에 50∼60부 정도 나간다. 시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기록적인 수치다.
연평도가 고향인 시인은 4살 때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광명시 소하동으로 옮겨왔다. 신림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연세대에 입학한 이후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숨진 채 발견된 1989년 3월7일까지 50여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주로 유년기에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우울한 기억이나 회상, 그리고 현대 도시인들의 살아가는 생활을 독창적이면서도 강한 개성이 묻어 나오는 시어와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평가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광명시가 오는 2017년 ‘기형도 문학관’을 세우기로 했다. 그곳에 시인의 육필 원고와 영상 자료를 전시하고 학생들을 위한 문학체험 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늘(6일) 저녁에는 25주기를 맞아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추모 문학제도 연다. 스물아홉, 푸르른 청춘을 살다간 시인 기형도. 그를 추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어 반갑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