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메터의 작은 키꼴에 40킬로그람도 안되는 왜소한 체구, 쌍지팽이를 떠날수 없지만 뛰여난 안목과 결단력, 친화력으로 마을촌민들을 이끌고 치부의 길로 질주한다. 그가 바로 전국로력모범이고 성특등로력모범이며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 당지부 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직을 맡고있는 김순철(55세)씨다.
그는 1988년에 4만원을 투입하여 장애인과 극빈호들로 생산복리원을 세우고 이듬해 식료품공장을 세워 년판매액 200만원을 넘기는 기적을 창조했다. 김순철이 창조한 기적은 이때로부터 시작되였다.
2004년에 김순철은 광동촌의 당지부 서기와 촌민위원회 주임을 겸하기 시작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광동촌은 그제날 모습을 찾아볼수가 없다. 김순철은 마을에 있는 논밭을 새로운 농업과학기술과 관리모식으로 과학적으로 다루어 유기벼기지로 건설했다. 김순철은 록색입쌀가공공장과 연변동성무공해농특산물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비암산”표 브랜드도 신청했다. 촌민들은 탈곡이 끝난후 량식가공공장에서 서너달 일하면 3000여원의 월수입을 올릴수 있다.
마을거주환경을 개조함에 있어 광동촌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2500여만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210세대 농가를 전부 조선족전통가옥으로 건설했다. 그리고 포장도로를 닦고 태양에너지가로등을 가설했으며 전 성에서 처음으로 촌급오수처리공장을 건설하고 모든 농가에 실내화장실을 보급했다.
마을환경이 좋아지고 수입도 오르게 되자 해외거나 국내 대도시에 진출했던 촌민들이 하나, 둘 돌아와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촌민 김수원(43세)은 “해외에서 돌아온후 8헥타르의 논을 다루고있는데 올해의 순수입을 13만원으로 전망하고있다”면서 돌아오길 잘했다고 표했다.
조선족풍취가 짙고 전 주 10대 매력촌으로 선발되면서 살맛나는 고장으로 건설되자 집 떠난 촌민들이 돌아온것은 물론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기지 않는다. 7개 려행사에서 이 촌에 판사처를 두고있으며 30여개의 려행사에서 이 촌을 관광코스로 잡고있다. 지난해 광동촌을 찾은 관광객은 15만명을 웃돌았으며 관광객들의 요구에 따라 78개 민속민박을 건설했다.
지난해 광동촌 촌민들의 인당 순수입은 6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랐지만 김순철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여직껏 배짱 하나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이겼다. 앞으로 량질벼생산을 발전시키는 한편 민속촌건설을 다그쳐 촌민들이 집앞에서 농업과 관광업으로 더 꽃피는 생활을 하도록 하련다” 고 포부를 밝혔다.
/한옥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