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첩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당사자인 중국 국적자 유우성(34)씨가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그는 말처럼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 중국 국적자로 북한에서 태어난 유씨의 본명은 ‘유가강’이었다. 그는 ‘유광일’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탈북자로 위장하는데 성공한다. 2004년 그는 불과 45일 만에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라오스·태국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탈북자로 인정받은 유씨는 복권방 종업원, 건설 공사장 인부 등으로 일하다 2011년 서울시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취직하였다. 이름도 ‘유광일’에서 ‘유우성’으로 또다시 바꿨다. 2012년 그는 중국에 머물던 여동생 유가려(27)씨를 제주공항으로 입국시켜 탈북자로 위장, 당국에 신고했다. 그러나 그의 여동생은 정부 합동신문 조사과정에서 오빠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이라고 진술한다. 국가정보원은 2013년 1월 유씨를 간첩혐의로 체포했다.
2013년 8월 1심 재판부는 유씨의 간첩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탈북자로 위장하여 정부 정착지원금 2천500여만원을 받은 사실과 가짜여권으로 수차례 중국 등을 왕래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간첩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이유는 동생이 재판과정에서 “고문 등 강압에 의해 거짓 진술을 했다”고 갑자기 말을 바꿨으며, 법원에 제출된 사진이 북한이 아닌 중국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씨 동생의 진술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신문과정에서 과연 고문과 폭행이 행해질 수 있었을까?
문제의 핵심은 2심 재판이었다. 국정원은 유씨가 2006년 5월 23일에서 27일 간 모친상을 당해 북한에 다녀온 뒤 다시 들어갔다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6월10일쯤 중국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 후 유씨는 2007~2011년 각종 탈북자 단체 활동과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탈북자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중국 내 비공식 루트를 통해 ‘출(出)-입(入)-입(入)-입(入)’으로 기재된 유씨의 출입경 기록을 입수한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중국에서 북한에 갔다 온 것(出-入)은 이해가 되는데 그 다음 기록(入-入)이 문제가 되었다. 국정원은 유씨의 기록(入-入)이 중국의 싼허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의 입력오류 또는 전산착오 쯤으로 여겼다. 그래서 앞의 입국(入)을 출국(出)으로 바꾸면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차피 최종적으로 입국한 시점이 6월10일로 공소사실과 부합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중국 내 협조자에게 관련 자료를 무리하게 요구하다 보니 ‘出-入-入-入’이 ‘出-入-出-入’으로 위조된 서류를 넘겨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책임은 면키 어렵다. 차라리 ‘出-入-入-入’ 기록을 재판부에 그대로 제출하고 중국 측 전산오류 등의 착오를 설명했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씨 변호인 측은 ‘出-入-入-入’이라는 출입경 기록 진본을 제출했다. 그렇다면 유씨 측은 어떻게 진본을 입수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혹시 중국 측이 자국민을 보호하고 혈맹(血盟)인 북한을 두둔하려고 발급해 준 것은 아닌지…?
이제 유씨가 간첩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뒷전이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이 도마에 오른 탓이다. 유씨가 실제 간첩이라면 국정원의 실수가 그를 풀어준 셈이 된다. 반면 간첩이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이 외부 협조자의 증거조작 여부를 알았든 몰랐든 관계없이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정원의 혼란에 북한 보위부가 함박웃음을 지을지라도 증거위조에 놀아난 무능은 엄연히 존재하니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