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는 세종대왕의 도시다. 시내 관문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매년 한글날만 되면 전국 한글휘호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여주시에 세종 초·중·고교가 있고,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에는 세종이란 간판이 눈에 띄게 많다. 전국 최고의 쌀 주산지답게 쌀 브랜드도 세종대왕의 캐릭터가 들어간 ‘대왕님표 여주쌀’이다. 여주시 능서면에 세종대왕능이 있기 때문에 펼쳐지는 풍경이다. 바로 인근에는 북벌의 칼을 갈았던 효종대왕릉과 왕비 인선왕후의 능도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관광시즌만 되면 여주시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세종·효종대왕릉이 여주시에 가져다주는 유·무형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본보는 최근 세종·효종대왕릉의 관리실태를 집중 파헤쳐 보도했다. 지난해 7월 내린 집중호우로 능을 지켜주던 좌청룡 우백호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을 비롯해 일부 부속 시설물이 훼손됐는데도, 8개월째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유지관리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은 까다로운 복구시스템, 예산문제로 복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취재를 하면서 지금까지 머릿속에 각인된 질문이 있다. 이 과정에서 여주시는 무엇을 했을까? 여주시는 과연 주인의식을 갖고 있을까? 여주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관리해서”라고 말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에 대한 사실상 독점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여주시가 주인의식 없이 ‘남의 집 일처럼’ 대하는 것은 아주 곤란하다. 공직자는 물론 기업체, 초·중·고생들이 조선왕릉에 대한 수호천사, 지킴이로 나서는 범 시민운동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우리는 세종대왕을 통해 그의 애민사상, 리더십을 배우고 미래를 설계한다. 상처받고 신음하는 조선왕릉을 보면서 누군가 바늘로 나의 폐부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선시대 능묘를 관리하던 벼슬인 능참봉은 능 주변 소나무 한 그루라도 손상되면 3년간 유배를 갔다. 능참봉이 아니더라도, 대왕님 앞에 무릎 끊고 고개를 파묻은 채 통곡하고 싶다. “전하! 소인들의 죄를 벌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