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A시의 B팀장은 요즘 한숨이 부쩍 늘었다. 각종 민원인들의 방문과 전화는 쉴 틈 없이 쏟아지고 결제할 문서는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데 직속상관인 C사무관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진 때문에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벙어리냉가슴 앓는 신세가 돼버린 지 오래다. 그나마 운 좋게 민원 협의라도 하려 해도 어느 틈엔가 다른 과 직원들이 자리를 점령하고 끊이지 않는 담소가 이어진다.
사례2. 다세대주택 건설과 분양을 주업으로 하는 D씨는 ‘선거철의 악몽’이 재현됐다며 한숨이다. 각종 서류를 맞춰 시청과 구청을 찾아도 협의는 커녕 얼굴이라도 보려고 기다리다 공치고 오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또 먼저 지은 원룸단지의 취득세 확인을 위해 구청에 전화를 해도 통 연결이 안돼 직접 방문했다가 “컴퓨터를 안 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는 직원의 퉁명스런 설명에 어이가 없었다.
6·4전국동시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연임 행보에 집중하는 단체장들의 부재 속에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는 물론 레임덕이 심화되면서 대민 행정서비스의 차질 우려가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더욱이 지자체장의 선거 행보 속에 이 같은 현상이 고위 공직자부터 하위직까지 도미노처럼 번지면서 사실상 ‘멈춰선 행정에 따른 공백’으로 시민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17일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6월 4일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경기도지사는 물론 시장·군수 등 자치단체장과 도의원 및 시·군의원, 도교육감을 동시에 뽑는 선거로 현재 임기 중에 있는 도내 거의 모든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연임 도전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처럼 시장, 군수들이 선거를 불과 2개월여 앞두고 사실상 연임을 위한 행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면서 주민을 위한 행정서비스는 뒷전이 됐다는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또 단체장들이 득표와 직결되는 ‘현장민원 해결’의 일환으로 주민들을 찾아가 대화 나누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요즘에는 단체장이 시·군청을 거의 비워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본청 내 고위직인 국장들은 각종 행사 등 외근을 핑계로 자리를 비우는가 하면 정례 회의마저 취소하는 등 사실상 업무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곧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야 할 과장(사무관)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출근과 동시에 타 부서는 물론 출신 학교나 지역별 내부 소모임 다지기에 오전 업무시간을 할애하는가 하면 오후에는 국장의 부재를 틈타 덩달아 출장 또는 조퇴신청을 하고 외유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공직 기강해이가 전염병처럼 번지면서 본청을 방문한 민원인과 시민들은 ‘행정 공백’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상태다.
전창민(43)씨는 “선거를 앞두고 시장은 물론 국·과장에 팀장까지 정상적인 업무수행 의지가 없다보니 민원인을 직접 응대하는 담당자들만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일쑤”라며 “선거 한 두번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마는 게 속편하다”고 비꼬았다.
A시의 김모 주무관은 “각자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시장님과 국장, 과장 모두 일손을 놓고 있다 보니 담당자들만 죽어나고 있다”며 “이럴 바엔 차라리 선거가 없어지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훈기자 jjh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