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문득,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뱉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툭, 던진 말이 가슴에 ‘꽂’혔다. 봄날 피어난 ‘꽃’처럼. 꽃은 흙을 딛고 피지만 말은 가슴에 꽂혀 돋아나는 구나, 싶었다.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라,는 이 체념섞인 말은 언제부터인가 식자(識者)들 사이에 주문(呪文)이 된 듯하다.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실천하려 했던 모든 선지자들에게 봄은 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상을 받아들여줄 제후를 찾아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가 그랬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 정도전이 그렇다. 합종연횡을 거듭하다 최고의 자리에서 뜻하지 않은 이방원 심복의 철퇴에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정몽주는 또 어떤가.
그래서 역사는 교훈이며 정치는 살아움직이는 생물이겠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살아 움직이는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은 실패의 나락에 빠져 저승행 직행열차를 타게 되는가 보다. 하여,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스스로가 칼 자루를 쥐지 못했거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자문(自問)하는 계절이다.
이런 봄날이면 혼자 읊조리는 시가 있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이상화 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대학시절 춘천의 허름한 교회에서 격정적인 목소리로 이 시를 토해내던 고(故) 성래운 교수의 절절한 음성이 심장에 ‘꽂’혀 해마다 봄이 되면 내 가슴에 ‘꽃’을 피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치의 계절, 저마다 자신만이 적임자라고 ‘깝치는 나비와 제비’가 난분분하다. 정치적 이상을 현실에서 꽃피우려면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닌가?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