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일컬어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말이 전에 없이 실감케 하는 날씨다. 한 주간에 봄에서 여름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날씨에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입고 춥다고 야단이다. 갑자기 내린 진눈깨비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던 이웃집 목련이 나무에 달린 채 얼어 죽었다. 눈으로 부르면 향기로 대답하던 고결한 자태는 간 곳이 없고 흙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몰골로 비를 맞는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도 못했다.
봄 가뭄에 비를 기다리기는 했지만 간간이 소리를 내며 내리다 밤이 되면서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진눈깨비까지 몰아치고 날이 밝자 산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하얀 능선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춥다고 옷을 껴입고 있는 사이에 맨살에 눈을 맞으며 비명도 못 지르고 죽어간 봄꽃이 떠오른다. 개동백, 진달래, 꽃다지, 냉이, 개나리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마음이 쓰였다. 꽃이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다 때가 있는데 꽃구경 한다고 들떠 요동치는 날씨는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갔다. 이상기온도 사람이 저지른 과욕과 무분별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어떤 준비도 할 수 없고 아무 죄도 없는 연약한 꽃이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볼 일이다.
마침 주말이 식목일이자 한식과 가까워 성묘객들이 갑자기 내리는 비에 잠시 어수선하다. 빗길에 친구가 반가운 얼굴로 들어선다. 비 때문에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얼굴도 볼 겸 좋은 소식도 들려 줄 겸 들렀다며 봉투를 건넨다. 아들을 얻게 되었다며 활짝 웃는 친구는 딸을 빼앗길 마음의 준비는 다 했는지 서운한 기색은 조금도 없다. 그러면서 혼수 예단 준비하느라 진이 빠진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듣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난다. 정말 중요한 준비는 신랑신부와 두 집안의 마음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물건 사 나른 이야기와 돈 쓰고 다닌 자랑만 하고 있으니….
하기야 나처럼 아무 대책도 없이 어려운 집 장남과 덜컥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무슨 걱정이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모든 절차가 끝나고 본격적인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첫날 나는 꼭두새벽부터 꽃단장에 한복을 차려입고 문안 인사를 드리려고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시부모님 차림새가 영 아니었다. 첫날에는 엉겁결에 절을 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무언가 꺼림칙했다. 다음날에도 일찍 문안인사차 안방 문을 열었으나 전날과 마찬가지로 시부모님께서 주무시던 옷차림 그대로여서 살짝 문을 닫으며 말씀드렸다.
“준비되시면 말씀하세요.”
그러나 시부모님으로부터 끝내 아무 말씀도 들을 수 없었고 하는 수 없이 그냥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계속 안방으로 귀를 기울이다 뭔가 잃어버린 듯 허전하고 불안하게 아침시간이 지나갔고 혼자 잘난 며느리의 문안인사는 달랑 하루로 끝이 난 셈이었다. 결국 다홍치마 새댁에게는 뼛속까지 쌀쌀한 날이 이어졌다.
남의 자식을 내 자식 삼을 준비도, 남의 부모를 내 부모로 모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우리들의 춥고 쓸쓸한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