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에서 주관하는 공기업 개혁을 위한 제22차 작업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파리에 왔다. 한국에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시 개발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돌출하고 있어 도시의 관점에서 파리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도 갖고 있다.
역사 의미가 현실에 살아있는 도시
파리와 서울을 비교하면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파리는 역사가 현실에 살아있는 도시라는 느낌이다. 현대의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기보다는 1800년대, 1900년대 건설된 건물 가운데를 걸어서 지나도록 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물건은 중고품이 되어 값이 떨어지지만, 100년이 지난 물건은 골동품이 되어 고가가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즐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콩코드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2차 세계대전 중에 처칠 수상이 이야기한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는 어록과 함께 처칠 동상이 서 있다. 성공한 역사와 함께 전쟁 패배의 상흔도 간직하고 있다. 도시는 새로운 건축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 도시는 자신의 색깔을 가지게 된다.
예술이 생활 속에 살아있는 도시
파리는 도시 생활 가운데 예술이 살아있다. 예술의 도시라는 게 소수 엘리트가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화 되어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강조하지만 그런 명성지를 찾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각종 작품들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 예술에 감싸져 있는 도시이다. 우리에게 IT가 일상화되어 전자에 감싸여 있는 수준만큼이나 파리는 예술이 일상화되어 있다. 조금만 발품을 들여 ‘작은 성(petit palace)’이라는 곳을 방문하면 무료로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학생들이 현장에 와서 미술품을 보면서 학습하는 모습도 새삼스럽다. 교과서를 통해 외우는 미술이 아니라 즐기고 이해하는 방법을 실제 작품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다. 내가 예술가가 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느끼고 즐기는 방법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도시의 길을 걸으면서 무심코 만나게 되는 각종 예술품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나의 인문학적 감성이 자극된다. 그것이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한다.
새것보다 우리 것을 찾는 노력
우리는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지나 3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성장 잠재력도 이야기하고, 환율도 거론된다. 그러나 국민 소득 4만 달러의 도시에 와서 느끼는 것은 문화 없이는 모래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파리도 좀도둑, 실업, 빈곤 격차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의 IT 기술 관점으로 보면 지하철은 낙후되어 있다. 그러나 도시 운영의 철학과 기본 토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지역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를 유혹하기 위한 각종 선심성 구호가 난무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이 갖는 궁극적인 효과나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표가 된다면 그리고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일단 고함을 지르고 본다. 그러나 공천 후보자들의 고함 소리가 유권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두고 고함을 지르는 것과 같다. 5층에 서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2층을 지나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버튼을 눌러서 엘리베이터가 자기 층에서 멈추도록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향해서 멈추어 달라고 고함을 지른다고 되지 않는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의미 없는 고함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버튼을 누르는 활동을 구분해야 한다. 정치인은 세상을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의 발견과 발명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회를 잘못 설계하면 잘못된 과학 발명품만큼이나 세상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