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맞벌이 하는 부모님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유년의 추억 대부분은 하늘과 바람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으라면 견공(犬公)이다. 그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두 친구가 있다. 한 친구는 이제는 희귀종이 된 변견(便犬)이고 또 다른 친구는 백구(白狗)다. 변견의 이름은 삐삐, 백구의 이름은 진순이였다.
삐삐는 용맹했다. 어느 날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아랫집에서 키우던 개부부(犬夫婦)를 맞닥뜨렸다. 동시에 으르렁거렸고 공포가 밀려왔다.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삐삐가 나를 위해 깡패부부를 상대했고, 결국 승리했다. 그래서 생명의 은인이다, 삐삐는.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 숨을 거둘 때까지 우리는 함께했다.
진순이는 쥐를 잘 잡았다. 집마당 한 귀퉁이에 텃밭이 있었는데 담 사이로 쥐들이 종종 출현했다. 그러나 진순이가 청소견기(靑少犬期)를 지날 무렵부터 쥐들이 자취를 감췄다. 진순이 스스로 서생박멸(鼠生撲滅)에 나선 때문이다.
견공(犬公)과의 긴밀함은 자연스레 토종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토종견은 무엇이 있을까. 진돗개와 삽살개, 풍산개, 불개, 제주개, 통일개, 동경이 등이다.
이름도 생소한 동경이가 관심을 끄는 건 꼬리가 짧거나 없는 종(種)들이 있기 때문이다.
‘동경잡기(東京雜記)’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옛 문헌을 들추면 동경이는 경주 지역에서 널리 사육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 고분에서 토우로 발굴된 것을 보면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201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540호로 지정됐다.
오랜 세월 의문에 쌓였던 동경이 꼬리의 비밀이 최근 풀렸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꼬리 있는 동경이와 없는 동경이의 ‘단일염기다형성(SNP)’ 17만개를 비교, 차이가 있는 유전자 마커 14개를 찾아낸 것이다. 이 가운데 염색체 1번과 2번에 위치한 유전자 2개가 꼬리뼈 퇴화와 관련된 특이 단백질을 만들어 진화 과정에서 꼬리뼈가 퇴화되도록 유도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동경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토종개의 혈통보존과 관리에 필요한 연구도 계속할 것이라니 대단한 기개다. 농진청 만세다.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