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인기드라마 ‘정도전’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이인임이 숨을 거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나라의 모든 정치를 총괄했지만 결국 또 다른 정치논리에 희생돼 비운을 맞은 것이다. 그 중심에는 조선(朝鮮) 건국의 주역 정도전(鄭道傳)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실 고려시대 말 문하시중의 권한은 드라마와 달랐다. 권한이 매우 미약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6조의 장관과 역할이 거의 비슷했다. 다만 그들의 수장으로서 문서를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역할만 달랐다. 때문에 국사를 제대로 이끌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정도전은 조선 건국 초기 재상의 권한을 강화해야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논리를 강하게 폈다. 정도전은 ‘재상론(宰相論)’에서 “재상이란 위로는 왕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사람”이라 규정하고 ‘권한’을 이렇게 강조했다. “재상은 왕을 실질적으로 대행하는 사람이다. 정치를 잘못해 변고가 일어날 경우, 왕 혼자 책임지는 게 아니다. 재상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 재상은 하늘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재상의 자리는 이처럼 막중하다. 따라서 정권은 하루라도 재상에게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백관을 통솔하고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선 인사권·군사권·재정권·포상 및 형벌권 등을 모두 포함시킨 막강한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도전은 권한이 재상에게 있지 않고 사간원과 사헌부 등 ‘언관(言官)’에게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내명부인 ‘궁관(宮官)’에 있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도전은 왕이 옳은 일을 하면 적극적으로 따르지만, 옳지 않은 일은 끝까지 거부해서 막아야 하며 ‘재상이 이런 자세를 버리고 왕의 비위만을 맞추려 한다거나 총애를 받아서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한다면 자기 직책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보필론도 피력했다.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을 정확하고 바르게 보필하는 것이 총리 아니겠느냐”며 권한보다는 보필을 특히 강조했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사고 책임을 지고 어제 사퇴했다. 야당 말대로 ‘비겁한 회피’인지, 대통령 ‘안위를 위한 결단’인지 판단이 혼란스럽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