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발언 이후 규제 개혁은 전국가적인 화두가 됐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는 ‘만악(萬惡)의 근원’인 듯하다. 그러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경제우선 논리에 의해 안전우선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지난 8일 안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을 “자본의 입장에 치우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드러낸 최악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민변은 이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17대 과제를 발표했다. 첫 번째 진상규명 과제는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인한 안전장치의 해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20년인 여객선 선령제한을 30년으로 완화했다. 결국 노후화된 여객선 운항제도를 정부가 앞장서 도입한 셈인데, 사고가 난 세월호도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 이후 일본에서 들여온 노후 선박이다. 선령이 18년이나 된 데다 불법으로 개조·증축까지 했다.
이번 사고로 박근혜 정부의 수준 낮은 위기대처능력이 드러났고, 규제개혁도 난관에 부딪혔다. 실제로 국회엔 세월호 사고 직전까지 한 달간 약 40건의 규제개혁법이 쌓였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이후 보름 정도 만에 이른바 ‘세월호법’이 규제개혁법과 비슷한 분량으로 발의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2일까지 발의된 계류안 중 이렇다 할 규제개혁안은 사실상 한건도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안전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대형참사를 방지하거나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법안과, 안전관련 처벌조항을 강화하거나 의무사항을 신설하는 ‘규제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규제 개혁을 두고 ‘가진 자들을 더 갖게 하려는 조치’라는 비아냥도 있다. 분명 혁파해야 할 규제들이 있다. 이를 테면 수도권정비개혁법 같은 규제다. 이 법에 의해 경기도 지역에는 대학, 대기업, 공장, 관광단지, 물류단지 등의 입지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문수 지사의 말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악법 중의 악법’으로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서 보았듯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행복, 사회공동체와 국가를 지키기 위한 규제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그보다 정의, 청렴, 도덕이 우리사회의 최우선 가치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