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본,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갖고 있는 사회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책은 일본의 원자력발전 반대운동의 기운이 한창 높아지는 가운데 쓰였다. 그렇기에 원전, 사회운동, 일본에 대한 특정한 관심과 관련이 있지만, 보다 폭넓은 문제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탈공업화’(‘리스크 사회화’ 또는 ‘글로벌화’)의 조류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용과 가족의 불안정화, 격차의 확대, 정치의 기능부전, 민주주의의 한계봉착, 공동체의 붕괴, 노조의 약체화, 편협한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증대, 이민자 배척운동이나 원리주의의 대두 등은 현대의 어느 나라에서나 발견된다.
2011년 12월 30일 아사히신문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지진 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답한 사람이 약 71%, 데모에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4%이다.
그러나 데모에 참가하는 것은 저항감이 든다고 답한 사람이 63%,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람 중 “세상은 간단히 바뀌지 않는다”라는 이유를 댄 사람이 67%였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가에게 맡기면 된다고 한 사람은 전체의 3%에 불과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사회에 대한 불만은 누구나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실제로 바꿀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정치가에게 맡기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정치에 관여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데모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사회는 과연 바뀌는 것인지, 사회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를 바꾼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역사적, 사회구조적, 사상적으로 성찰해보고자 하는 것이 책의 전체적인 취지다.
저자는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직접행동과 참여를 강조한다.
“데모를 해서 무엇이 바뀌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데모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한다. 대화를 해서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하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회, 대화가 가능한 관계를 만들 수 있고, 참가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하면 참가할 수 있는 사회, 참가할 수 있는 자신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책은 단순히 데모를 비롯한 사회운동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의 태동부터 그것이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로 발전된 역사적 흐름을 짚으며 사회운동의 가능성과 행동을 모색한다. 근대과학·철학·정치·경제 등 다양한 방면의 사상의 출현과 발전,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으며, 인문학적으로 깊은 성찰을 제시한다.
또 선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투표를 통해 대표가 선출되는 체제는 유력자나 대규모 조직을 등에 업은 사람이 승리하게 된다. 이것은 루소가 말한 것처럼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탈공업화 사회에서는 고용 및 가족은 불안정해지고 격차는 심화된다. ‘나’는 정당에 의해 대표되지 못하고, 갈수록 정치 또한 불안정해진다. 이런 가운데 돌발적 인기를 얻는 정치가나 극우정당이 보수정당이나 노동정당을 위협하기도 한다.
때문에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나 세계금융공황 등이 발생했을 때 실업자나 불안정한 노동자의 증가는 폭동 등의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것은 유럽 등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현상이다./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