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유행가가 있다. 그만큼 사랑과 눈물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독한 사랑이 있어야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절절한 사랑이 눈을 타고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는 예는 역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중국 진나라 때 ‘맹강녀(孟姜女)의 눈물’은 또 얼마나 감동인가.
시황제의 만리장성 건설공사에 징발된 남편의 겨울 옷을 준비해 찾아간 맹강녀는 남편이 고역을 견디지 못헤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더 기가 찬 건 남편의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성 밑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열흘 만에 성이 와르르 무너졌고 그 곳에서 남편의 시신이 나타났다. 간절함이 빚은 기적이다.
절실한 눈물은 또 있다. 친구의 죽음이 너무 슬퍼 쏟아낸 눈물로 양쪽 눈알이 씻겨 나온 고대 멕시코의 신 쇼로터의 눈물은 인간의 가벼운 관계를 질타하는 신계(神界)의 준엄한 물음이다. ‘너는 벗과 동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다른 눈물도 있다. 16세기 아포스트리오스는 ‘악어가 사람의 전신(全身)을 잡아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머리에 눈물을 흘려 그 열로 머리카락을 뽑아낸 후 먹는다’고 했다. 에라스무스도 ‘격언집’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일강의 악어는 인간을 잡아먹을 때 머리를 물고 우는데 이것은 ‘미안하거나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머리는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탄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라고. 슬픔 없이 흘리는 눈물을 뜻하는 ‘악어의 눈물’의 기원이다. 하긴 악어의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피멍들게 하는 족속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런 작자들의 끝은 어떨지, 보고 싶다.
이처럼 눈물에도 색(色)이 있고 격(格)이 있다.
요즘 참 많은 눈물을 본다.
진도 팽목항과 안산에서 지금도 흘러내리는 피눈물과 아들로부터 ‘미개하니까 울지마’라는 충고를 듣는 풍자 만평의 주인공과 대통령의 눈물까지.
눈물공화국이다, 색(色)과 격(格)이 분명히 다른.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