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는 한 대기업 고위 간부 A씨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검찰 수사관들이 자신의 사무실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전화였다. 필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A씨의 사무실로 가 수사 상황을 파악하면서 법률적 조력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필자가 그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검찰 수사관들은 이미 압수·수색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확보한 뒤, A씨에게 다음 날 해당 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는 소환 통보를 하고 돌아간 뒤였다. 필자가 A씨 및 A씨의 법무 담당 직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신이 3년 전 지방의 한 발전소 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그 발전소 주기기 납품 용역을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주기기 중 일부 기기의 납품을 했던 조그만 설비회사 대표인 B씨가 최근 지방의 한 검찰청에 A씨를 포함, 위 발전소 기기 납품 업무에 관여된 담당자(A씨의 부하직원임)들에게 뇌물을 주고 기기 납품을 했다는 제보를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A씨 자신은 B씨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고, 단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B씨가 A씨와 부하직원들의 회식 자리에 나타나 회식비로 200만원을 준 적이 있어 그 돈으로 그날 회식비로 쓴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범죄수사에 필요한 때에는 판사의 영장에 의해 압수·수색 또는 검증을 할 수 있고, 피의자를 체포 또는 구속하는 경우나 현행범 체포, 긴급체포의 경우에는 영장 없이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위 사건에서 검찰은 이미 B씨의 진술에 의해 A씨 등의 범죄 혐의(뇌물수수 또는 배임수재 등)의 대강을 파악한 뒤, 그 구체적 증거(돈이 입금된 통장 내역 또는 금전 수수 정황을 뒷받침하는 일지, 장부 등 물증)를 찾기 위해 A씨의 사무실과 자택, 승용차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이다.
A씨는 그 후 사내 변호사와 현지 검찰청 인근 변호사의 조언을 받으며 수사에 임했으나, 몇 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 과정 내내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지 못하고 결국 구속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A씨가 자신의 무고함을 검찰에 납득시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위 회식 당일 B씨로부터 회식비로 지급받은 200만원으로, 이 돈은 비록 A씨에 대한 범죄 혐의사실 가운데 일부분이지만 그것이 나머지 전체 금액에 대한 유죄의 정황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A씨는 이후 공소 범죄 사실을 이유로 회사에서 해임까지 당해 사회적 명예 실추는 물론 경제적인 고통까지 안게 되는 대가를 치렀다고 한다.
물론 A씨 혐의의 유·무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재판 과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잘 나가던 대기업의 고위 임원이 3년 전 지방의 한 발전소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업자(?)로부터 분별없이 지급받은 회식비가 오늘 본인 인생의 중대한 위기를 자초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도 행여 술집에서 유흥하며 일(?)을 도모하는 정치인, 관료, 기업인이 있다면 위 작은 사건 하나를 무겁게 교훈으로 받아들이기를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