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3 (토)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월요논단]분노는 짧게, 반성은 길게

 

당혹과 분노, 참담으로 가득한 세월호의 시간표가 벌써 한 달을 넘어섰습니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시신이 상당수 남아있고, 슬픔과 조문의 노란 리본이 거리에 물결치고 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 가증스러운 범죄적 사고에 우리는 얼마나 분노했으며 참담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화나고 답답한 심경이 진정되기보다는 더 큰 응어리로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오래된 종양처럼 자꾸 가슴을 치밀고 올라옵니다. 온 사회가 일종의 정신적 무정부상태를 헤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간 매스컴을 통한 상황 보도와 사고의 원인을 대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어쩌면 이렇게도 일관되고 정교하게 짜인 비극의 시나리오가 우리 사회를 무대로 해서 한 치 어긋남 없이 그 종말을 향하여 치달려 올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오직 돈벌이만이 목적이 되고 사람의 목숨은 짐짝의 무게보다 경시한 선사의 영업행태와 그 뒤에 도사린 종교의 탈을 쓴 철면피 사주,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을 나 몰라라 하고 뺑소니치는 선원들, 멀거니 구경하듯 몸을 사리는 구조대원들, 이 중에서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그 짜인 듯한 시나리오에서 벗어났더라면 삼백 명 희생자의 상당수는 구조될 수 있었을 텐데 비극의 주인공들은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제가끔 악역에 충실했습니다. 당혹과 슬픔은 관객인 국민의 몫으로 남겨놓고 말입니다.

얼마 전 이번 사고가 바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는 요지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논지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번 사고에 뜻뜻할 수가 없습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대형 안전사고를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당사자들만의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고 원인이 우리 사회 전반에 보편적으로 깔려있고 발생 개연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위하는 세상에서 주체인 사람, 즉 우리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이런 우환은 언제고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무슨 말로도 설명과 위안이 되지 못하는, 말이 끊어진 이 언어도단의 상황에서 희생된 영령과 가족들에겐 죄스럽고 민망한 말씀이 됩니다만, 남겨진 자들에겐 또다시 여며가야 할 산 자의 길이 있습니다. 한 달여 간 슬픔의 강물이 온 나라를 범람하면서 가라앉은 민심과 이로 인한 여파가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더욱 압박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사고를 사회적 분란이나 정쟁거리로 삼아 또 다른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사이비 정의꾼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분노하고 화풀이하기는 쉽고 또 누구나 느끼는 충동입니다만, 그런다고 해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분노와 질책을 거두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풀이 하듯 일과성으로 끝내곤 했던 과거의 경험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야말로 끈질기게 우리 사회를 반성하고 질정하는 노력을 모아가자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과거 우리 사회는 사고가 날 때마다 냄비 끓듯 비난이 아우성치고 씻김굿 하듯 책임자 몇 명 처벌하고 난 뒤는 다시 망각으로 되돌아가는 타성을 되풀이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제발 그런 타성에서 벗어나 사회의 운행 메커니즘 전반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길고도 어려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분노와 비난 일색의 열기를 성찰과 개혁 에너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궁금해 하던 대통령의 담화문도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굳이 두 번, 세 번 사과를 해야 하는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 않습니다만, 비장하게 반성하는 모습과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단호한 결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임기 5년의 단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산적한 터에 엄청난 과제 하나가 더 부과되었습니다. 이쯤에서 대통령의 의지를 믿고 힘을 보태는 한편, 그 이행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자세를 가져갔으면 합니다. 비난과 분노의 화살을 거둬들이고 자성과 질정의 촛불을 나부터 높이, 그리고 오래오래 밝혀 들 때입니다.

 







배너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