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교황님의 올 해 방한은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과 103위 시성식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셨고,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위해 두 번째 방한한 후, 25년 만에 이루어진 세 번째가 되는 셈입니다. 이번 방한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124위 시복시성이 주 목적이지만, 꽃동네를 방문하고 평화와 화해의 미사를 드리는 것도 계획되어 있습니다. 방한 그 자체도 큰 의미가 있지만 교황님의 이번 방한이 특별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교황님의 즉위 후 보여주시고 행동하신 파격적인 모습이 가톨릭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전 인류에게 큰 충격과 도전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황제가 아니니 교황이라고 부르지 말고 교종이라고 호칭할 것, 해방신학자 보프의 복권, 무슬림 소녀의 발을 씻어준 일, 사생아에게도 세례를 허용한 일, 동성애·이혼·낙태에 대해 교회가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발언,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반대와 시리아를 위한 기도의 날 선포, 아르헨티나 신자들이 로마에서 열리는 즉위식에 오려고 하자 축하미사에 오는 대신 여행비를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당부한 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운전자들을 축복한 일, 바티칸 은행 개혁,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서의 기도 등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신 교황님은 선출된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나같이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황님은 풍부한 유머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즉위식이 있기까지 일반 사제관에 머물면서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서 놀라게 하신 교황님은 뛰어난 요리솜씨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막시모 신학교 시절 요리사가 없는 주일에는 학생들을 위해 요리를 하셨는데, 요리 실력이 좋으냐는 기자 질문에, ‘글쎄요. 아직까지 아무도 제가 만든 음식을 먹고 죽거나 탈이 난 사람은 없네요’라고 답변하셨지요. 사제독신제 폐지라는 매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교황님은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열린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사제독신제 폐지가 현재의 사제 부족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을 만큼 사제 희망자 수를 증가시켜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제독신제가 폐지될 경우 더 이상 혼자 있지 않아도 되고 부인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경우 부인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보너스로 장모님도 얻게 되겠지요.’
제 경험에 유머는 자신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도 ‘사랑을 최고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볼 때 가장 극악한 죄는 증오라고 해야겠지만, 저는 증오보다 오만함을 가장 혐오합니다. 오만이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지요’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만이 유머를 할 수 있지요. 교황님의 파격적인 행동은 교황의 권위를 스스로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권위를 다르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원래 ‘권위’(Autoridad)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auge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장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억압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억압이라는 것은 권위의 변형된 형태일 뿐이며 만약 제대로 권위가 행사된다면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권위를 가진 자란 바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내는 능력을 갖춘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위, 특히 종교인과 정치인의 권위가 위장된 억압의 수단으로 전락한 오늘의 현실에서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교황님의 이번 방한이 아시아의 청년들과 상처받은 한국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주
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